“증거 확보 목적이라도 위법”…아내 차량서 블랙박스 훔친 남성 선고유예

형법상 정당행위 요건 충족 못해…

 

이혼 소송 과정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차량에 침입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가져간 남성이 형사재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형사3단독 박기주 부장판사는 자동차수색 및 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개월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범죄 성립은 인정되지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룬 뒤 유예 기간을 경과하면 형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A씨는 지난해 8월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한 도로에서 문이 잠기지 않은 아내 B씨의 차량 내부에 들어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가져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었으며, B씨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씨가 제출한 해당 증거는 민사재판에서 채택되어 부정행위가 인정됐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행위의 목적과는 별개로 그 수단과 방법이 형법상 허용되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법원은 “간통이나 부정행위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타인의 주거 또는 차량 등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4도5148 판결).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동기와 목적의 정당성뿐 아니라,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보호이익과 침해이익 간의 균형, 긴급성, 다른 수단이 없는 보충성까지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대법원은 이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증거 확보의 필요성만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재차 밝혔다(대법원 2021.9.9. 선고 2020도12630 전원합의체).

 

박기주 부장판사는 “이 사건 범행의 죄책이 가볍지 않고, 피해자인 B씨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사판결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인정된 점 등 범행의 동기와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며 형의 선고를 유예한 이유를 설명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아내의 차량에 들어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가져간 행위는 그 자체로 절도에 해당할 수 있고 차량 내부에서 저장매체를 탐색·확인하는 과정은 자동차수색으로 평가될 수 있다”며 “이혼 소송에서 부정행위 증거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보면 위법성이 조각되는 정당행위로 인정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초범이고, 민사재판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인정되는 등 범행 동기와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어 선고유예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증거 확보의 필요성과 형사책임 성립 여부는 엄격히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