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죄지은 사람을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벌을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죄인들이 동그라미 밖을 벗어나지 않아 그 벌이 계속 유지되었지만 어느 순간 동그라미를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그라미는 벌로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그라미 대신 높은 담을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었다. 이후 담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튼튼한 지붕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오늘날의 교도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우리 개개인의 양심이고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심의 동그라미를 벗어난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 동그라미 속에 가두어 놓기 시작했고, 동그라미의 원칙과 약속이 깨질수록 또 다른 동그라미가 그려졌으며, 급기야 그 안에 가두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 만들게 되었다. 수용자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자신은 재수가 없어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이고, 본인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도
Q. 저는 ○○소년교도소에서 부정기형(단기 5년, 장기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수형자입니다. 소년수의 단기형은 현실적으로 분류심사 외에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단기가 경과했더라도 석방되거나 처우가 바뀌는 일은 없었습니다. 법에는 “검사의 허가나 지휘에 따라 집행을 종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 조항인지 궁금합니다. A. 소년법상 부정기형 제도는 ‘단기 = 가석방 가능 시점’, ‘장기 = 최대 집행 기간’을 뜻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처우(가석방·중간처우 등)가 장기를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단기만 경과했다고 형이 종료되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2007년 12월 21일 개정된 소년법 제60조 제4항에서는 ‘단기가 지난 후 교정 성적이 양호하면, 검사의 지휘로 형 집행을 종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신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 역시 교정 당국의 재량과 검사의 판단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적용 사례가 희소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Q. 안녕하십니까. 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라고 합니다. 소년법 제63조에 따르면 “징역 또는 금고를 선고받은 소년에 대하여는 특별히 설치된 교도소 또는 일반 교도소 안에 특별히 분리된 장소에서 그 형을 집행한다. 다만, 소년이 형의 집행 중에 23세가 되면 일반 교도소에서 집행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형의 집행 및 수용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제11조는 19세 이상 수형자는 교도소에, 19세 미만 수형자는 소년교도소에 수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법은 23세, 형집행법은 19세로 나이 기준이 충돌합니다. 저는 만 18세에 단기 3년, 장기 5년의 형을 확정받고 지금까지 4년간 복역 중입니다. 만 19세가 되기 전까지는 소년 수용실과 독방에서 생활했으며, 생일이 되자마자 일반 수용자와 함께 한 거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소년법 제63조에 따라 분리 수용을 요청했으나, 교도소 측은 여러 이유를 바꾸어 가며 면담 요청을 반려하였습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다만’으로 시작하는 조문에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민원을 반려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소년법 제63조 본문은 “그 형을 집행한다”라는 문구로 분리 수용을
Q.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누범 기간 중이던 2021년 9월 30일에 가석방을 받고, 같은 해 형기를 종료했습니다. 이후 누범 기간 중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었습니다. 첫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선고받았고, 지금 기소된 사건은 중고나라 사기로 인해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죄명이 다르더라도 사건 유형이 상습범으로 분류된다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인가요? 또, 5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 그런 사례가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Q. 저는 음주운전 및 무면허 운전으로 구속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음주 관련 범죄로 벌금, 집행유예, 실형 등 총 9~10회의 동종 범죄 전력이 있으며, 청송교도소에서 가석방 대상이 되었지만 실제 가석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재범률이 많으면 가석방을 받기 어려운가요? A. 두 분의 질문은 누범 및 재범 전력이 많은 경우 가석방이 가능한지에 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재 가석방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가석방 또는 사면 후 3년 이내 재범자(단, 과실범은 제외), 형기 종료 후 1년 이내 재범자(과실범 제외)는 가석방 제한사범으로 분류되어 원칙적으로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호칭은 ‘선생님’도 ‘교도관님’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종종 우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규율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아이가 있다. 박00. 늘 문제의 중심에 서 있던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그마저도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생계를 위해 1만원을 훔치다 상습절도로 이어졌고,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됐다. 그의 전과 기록에는 죄명보다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먼저 읽혔다. 소년교도소 안에서도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규율을 어겼고 징벌방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다른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사동팀장 김 모 교위는 달랐다. 그는 박00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를 쳐도, 욕을 해도, 징벌을 받아도 그는 늘 아이를 불러 세워 말을 건넸다. 꾸짖기보다 물었고, 지적하기보다 들으려 했다. 왜 그랬는지, 무엇이 힘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답이
몇 년 전 D교도소에서 야간 사동 팀장을 할 때였다. 수용 사동 담당 직원 K가 수용자 한 명을 조사 수용해 달라며 사무실로 데려왔다. 수용자들이 외부에 발송하는 편지에 찍힌 소인을 지우고 떼어낸 우표를 붙였다는 이유였다. 수용자 S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무릎을 꿇고 울며 사정했지만 담당 직원 K는 처벌 의사를 강력하게 표했다. 나는 사안이 크지 않고 수용자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만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원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우선 조사 수용을 시키고 다음 날 조사실에 연락해 훈계 처분을 해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사실에서는 우표 소인을 지운 행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라며 S에게 징벌을 부과했다. 수용 질서를 바로잡고 수용자들을 교정·교화하는 데는 교도관 각자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소년교도소에 근무할 당시, 교도소 직원들과 소년 수용자들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 선생님과 학생과 같이 서로에게 끈끈한 정이 있었고, 적대 관계가 아닌, 보살펴 주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였다. 소년 수용자들이 관규 위반을 했을 때도 큰 문제가 아니면 직원들은 조사 수용시
Q. 안녕하세요. 마약사범 가석방 현황 자료를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도별 마약사범 가석방 현황을 알고 싶습니다. A. 현재까지 확인된 마약사범 가석방 인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19년: 1명 △ 2020년: 1명 △ 2021년: 11명 △ 2022년: 28명 △ 2023년: 31명 법무부는 ‘처벌에서 회복으로’라는 치료 중심 정책 기조에 따라 마약사범 가석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2024년도 현황은 확인되는 대로 별도로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현재까지의 추이를 보면, 2024년, 2025년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행 치료조건부 가석방 제도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① 2범 이하의 단순 투약 마약사범이 대상으로, 출소 후 2개월 이상 재활 치료를 이행하는 조건 ② 유통·제조 등 중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대상에서 제외. 이와 관련해, “회복 가능성이 있는 유통·제조자를 위해 더 폭넓은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개선 요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재심에 대해 변호사에게 문의해도 답변이 없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형을 받고도 억울한 사정이 있는 분들의 심정을 충
2010년 8월 28일 천안교도소가 예기치 않게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 중국인 수용자가 대운동장에서 운동 중 담을 넘어 뒷산으로 도주했다가 직원들에게 잡혔던 사건이다. 도주를 차단하기 위한 전자 경비 시스템 울타리가 있었지만 주벽으로 연결된 건물의 돌출 부위를 잡고 올라가 5m 높이의 담장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시설이었지만 중국 기예단 출신의 수형자는 불과 몇 초 사이에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다행히 출동한 직원들이 도주자를 체포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운동장 근무자 4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2월에는 운동 중이던 한국인 수용자가 정문동과 연결된 전자 경비 시스템 위에 올라 주벽을 타고 뛰어내렸다가 직원들에게 바로 잡히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첫 번째 도주 사건 이후 시설을 보강하고 정문동의 창살을 모두 철판으로 막고 기름칠까지 해놓았지만 손톱으로 철판 윗부분을 잡고 10여 미터를 이동해 주벽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것을 직원이 발견해 체포했다. 도주 방지를 위해 전자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 후 이런 일이 연이어 발생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한 해에 두 번씩이나 그것도 같은 소에서 수용자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 차가 다니는 길처럼 길의 유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그 삶 역시 하나의 길이다. 삶에 있어 같은 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르막길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 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똑바른 길인 듯하다가도 구불구불 굽은 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교도소 문을 통과하는 길도 그렇다. 같은 길이지만 입소할 때는 절망의 길이 되고, 출소할 때는 희망의 길처럼 여겨진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교도소에 수용되는 길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길을 꿈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수용자의 인생 역정을 곁에서 들여다보는 교도관의 길을 걷다 보면 교도관은 어쩌면 성직자와 같은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인내와 절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형자 중에는 일반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건도 생긴다. 특히 가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백지 상태인 수형자들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 곤란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교도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