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죄지은 사람을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벌을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죄인들이 동그라미 밖을 벗어나지 않아 그 벌이 계속 유지되었지만 어느 순간 동그라미를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그라미는 벌로써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그라미 대신 높은 담을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었다. 하지만 담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튼튼한 지붕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오늘날의 교도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우리 개개인의 양심이고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심의 동그라미를 벗어난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 동그라미 속에 가두어 놓기 시작했고, 동그라미의 원칙과 약속이 깨질수록 또 다른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급기야 그 안에 가두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 만들게 되었다.
수용자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자신은 재수가 없어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이고, 본인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도 사회에서 버젓이 잘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태도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한편으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매춘부이다. 다만, 우리는 양지에 서 있을 뿐이다”던 천주교 신부이자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의 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5명의 친구가 학교에서 금지한 행위를 하다가 그중 2명이 선생님에게 적발되어 학생부로 끌려간 적이 있다. 끌려간 2명은 끝까지 나머지 3명의 이름을 대지 않았고 정학 처분을 받았다. 며칠 뒤 3명 중 한 친구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해 학생부에 자수를 하였고 역시 정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아무런 일 없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였다.
나는 교감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했다. 교감 선생님은 자수한 친구에 대한 처분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지만 한 번 내려진 처분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고 자수한 친구에 대한 처분은 철회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 곳이든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원칙 뒤에는 예외라는 단서조항이 존재한다.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되, 불가피한 상황, 정상참작이 되어야 할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단서조항이 제대로 적용되었다면 자수를 한 친구는 처음 처벌을 받았던 2명의 친구보다는 가벼운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예외가 적용되지 않았고, 그 결과 그 친구의 마음은 한동안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단서조항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때 편법이 되고 우리 사회의 질서는 그만큼 어지러워지고, 불신의 늪도 깊어지는 것 같다. 예외라는 단서조항은 가진 자들, 힘 있는 자들에게만 허용될 뿐, 힘없는 자들에겐 쓸모없는 조항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양심과 원칙의 동그라미는 형편없이 망가질 것이다. 자신이 죄를 지어서가 아닌 재수 없이 걸려서 교도소에 왔다는 수용자들처럼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잎도 온 나무의 말 없는 이해 없이는 갈색으로 변하지 않듯이, 죄를 범하는 자도 우리들 모두의 숨은 뜻 없이는 범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말을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칼릴 지브란의 말은 우리 사회가 범죄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접근을 해야 하며, 예방을 해야 할 것인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죄지은 자들의 잘못이 죄지은 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며, “내 탓이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죄지은 자들도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은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라는 원칙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예외는 가진 자들의 편법을 위해 사용될 것이 아니라 예외적 상황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동그라미를 벗어난 사람들에겐 손가락질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시각을 가게 될 때 우리 사회는 그만큼 밝아질 것이고 비로소 잃어버렸던 동그라미들을 하나하나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