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는 2054년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측해 범죄자를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도입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예지자가 살인 사건을 예견하면,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사건 발생 직전에 용의자를 검거하는 방식으로 수사가 전개된다. 영화의 핵심은 단순히 ‘미래를 예견한다’라는 점에 있지 않다. 진짜 공포는 ‘아무도 그 시스템의 판단과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결과를 무오류라고 믿고 집행한다’라는 점에 있다. 이 소름 돋는 풍경은 이제 2026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발전과 신뢰기반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인공지능은 법의 통제 아래 형사사법 절차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흔히 인공지능기본법을 기술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로만 이해하지만, 형사사법의 영역에서 이 법이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범죄 수사와 체포 과정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주로 사람들의 생체정보, 즉 얼굴을 인식하고 움직임을 추적하여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술에 쓰인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CCTV 영상만으로 인출책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
‘나는 피해자인데, 왜 여기 갇혀있어야 하지?’ 아마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으로 수용시설에 들어가게 된 이들 중 상당수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의뢰인들과 함께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상선의 지시를 받아 계좌를 넘기거나 현금을 전달했을 뿐, 전체적인 범행 구조를 알지 못해 한 행동이라는 진술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감정적으로 억울하다 해서 저지른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닌 ‘범행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해당 범행에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따라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는 달라진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조직적이고 분업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며, 단순 전달책이나 계좌의 명의자라 하더라도 범죄의 핵심 고리로서 평가된다. 따라서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있어 “몰랐다”, “나도 속은 것이다”라는 주장만으로 책임이 부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유죄가 선고되어 수용시설에 있다는 사실이 그 현실의 방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보이스피싱 사기죄에 연루되어 수감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수감 중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 보면 유독 시선을 붙드는 대목이 있다. 여러 장의 서류 사이에 짧게 기재된 동종 전과 기록이다. 형식적인 문장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한 줄은 사건 전체의 해석 방향을 바꾼다. 재범 사건은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 범죄 사실에 앞서 ‘다시’라는 전제가 붙고, 그 순간부터 수사기관과 법원은 동일한 행위를 전혀 다른 무게로 받아들인다. 형사사건에서 재범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과거의 처벌에도 불구하고 다시 법의 테두리를 넘었기에,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태도와 변화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 대상이 된다. 그래서 재범 사건에서는 범죄 구성요건보다 먼저 ‘전력’이 판단의 배경으로 깔린다.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형사사법이 반복 범죄를 구조적으로 위험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재범 사건의 특수성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한 차례 형사 절차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판단의 전제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왜 이번에는 달라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말이 아니라 정황으로 설명되는지가 핵심이었다. 그 지점이 정리되지 않으면 판단은 빠르게, 그리고 단정적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최우수로 졸업했고, 학부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았다. 여성인권위원회장과 등록금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제도 바깥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묵살되는지도 가까이서 보았다. 이후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며 확신하게 됐다. 법이 가장 절실한 곳은 화려한 회의실이 아니라 언제나 가장 낮고 절박한 자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법조인이 된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세운 원칙은 분명하다. 법을 사람을 구하는 언어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변호사와 미스코리아 출신 파워 블로거 여성 간의 불륜 스캔들이 있었다. 사건 초반에는 불륜 여부가 쟁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강간치상 무고를 교사했다는 의혹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해당 여성은 과거 증권회사 임원 A씨와 술자리를 갖던 중 말다툼 끝에 술병에 머리를 맞아 전치 2주의 열상을 입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바로 문제의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의뢰인이 “신체 접촉은 없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폭행으로는 합의금이 크지 않다”
아마 교도소 안에서 가장 궁금해할 질문 중 하나는 ‘나에게 선고된 형기를 꽉 채워서 살아야만 나갈 수 있는 것일까’일 것이다. 판결이 이미 확정된 이후라면 대다수는 이제 모든 절차는 끝났으니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법적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형을 줄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미 재판부가 판단을 내린 사건의 결론을 다시 바꾸는 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 예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가능성은 작을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경우와 전혀 모르는 경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절차는 항소나 상고일 것이다. 그러나 항소와 상고는 판결 선고 후 각각 정해진 기간, 즉 7일 이내에만 제기할 수 있다. 이 기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사건에 대해 다툴 수 없다고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항소·상고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법적으로 활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스쳐 지나가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실 수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무너져 내린 일상을 회상하실 수도, 그리고 ‘과연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두려움에 떨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채 항소심을 기다리는 시간은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오롯이 홀로 절망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과정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는 접견 자리에서 물어보십니다. “변호사님, 항소심에서 나갈 수 있을까요?” ‘1심 판결이 내려진 상황에서 항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포자기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30년간 수많은 음주 운전 사건의 항소심을 수행하며 분명히 보았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형기를 다 채우고, 누군가는 집행유예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항소심은 1심의 복사판이 아닙니다. 특히 음주 운전 사건의 항소심은 ‘남아있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설득의 장’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부터 항소심 전략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첫째, 후회를 넘어 성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들이 새로운 변호사를 찾아와 처음 내뱉는 말들은 대개 비슷하다. “상대방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된 것 같다”, “판사가 내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전임 변호사가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식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 인사들이 불리한 판결 앞에서 사법부를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는 장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이다 보니, 패소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심정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결문을 뜯어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대다수의 판결문에는 쟁점 하나하나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뇌와 치밀한 법리 검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서 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양과 무게를 고려하면, 그들이 내놓는 결론은 대개 그 시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 경우가 많다. 결과가 불리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한 판결’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변호사로서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다 보면, 가끔 가슴이 뛰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라, 이 지점은 판단이 빠져있네’, ‘이 증거가 왜 이렇게 해석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즉 ‘1
2003년 전남 진도 ‘송정저수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장동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넘게 복역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은 2017년 재조사가 시작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준영 변호사가 장씨를 도와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 개시를 위한 재판 과정에서 2003년 당시 수사의 허점들이 드러났다. 재심 결정이 이뤄진 뒤에도 장씨는 곧바로 출소하지 못했다.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형의 집행을 멈춰달라는 형집행정지 신청을 넣었지만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장동오씨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누워 독한 항암치료도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4월 2일, 드디어 형집행정지 결정이 나오던 날 그는 끝내 숨을 거뒀다. 그의 왼손과 왼발엔 수갑이, 오른발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진 채였다. 현직 교도관으로 병원에 근무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유독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교도소 내 중증 환자는 외부에서만큼의 치료와 관리를 받기 힘들고 병원에 입원해서도 전자발찌와 발목, 손목에 수갑을 찬 채 있어야 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교도관들은 수용자의 어려움을 가슴 아프
이달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등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체포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범인도피 교사),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직권남용), 계엄선포문 사후 작성 후 폐기(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공용서류손상),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대통령경호법 위반 교사)는 유죄로 인정하고, 외신 허위공보(직권남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전직 대통령 개인의 형사 책임을 넘어,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겪게 될 많은 이들이 반드시 곱씹어 볼 만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변호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번 판결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공수처 ‘인지수사’의 범위가 사실상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영장 집행의 위법성을 주장했다. 법문만 놓고 보면 내란죄가 공수처의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수처는 직권남용 수사 과정에서 내란 혐의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논리로 맞섰고, 재판부는 별다른 장황한 설명 없이 이
내 의뢰인은 검사가 징역 5년을 구형한 강간 사건의 피의자였다. 지인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이라는 점, 피해자의 진술이 존재했다는 이유로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내가 기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사건은 이미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피고인은 그 흐름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조는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기록을 따라갈수록 이 사건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인 간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유리한 증거의 확보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의 탄핵이다. 하지만 대개 물적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결국 재판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나게 된다. 나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갖는 무게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술의 신빙성은 선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을 통해 비로소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수사기관의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