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범위 벗어난 디지털 분석 ...성범죄 피고인 4명, 항소심서 전원 무죄

편집자주 : 해당 판결은 독자 중 한 분이 수사기관의 위법수집증거로 인해 구속된 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본지에 판결문을 직접 보내오며 “자신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독자들이 올바른 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이 판례를 기사로 다뤄달라고 요청한 데 따라 분석·게재한 것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피고인들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서울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 전단지를 살포하다 체포된 뒤 별건 수사를 통해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고등법원 제 9-2형사부 (재판장 민지현)는 지난 7월 1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1심 판결을 전면 파기했다(2024노3322).

 

앞서 피고인들은 지난해 6월, 서울 강남·서초 일대에서 유흥업소 홍보 전단지 약 5만 장을 주말 퇴근 시간대에 무단 살포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이후 경찰은 피고인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를 근거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법원이 ‘휴대전화 원본 압수는 불허하고, 청소년보호법 위반 관련 정보에 한해 분석’을 허용한 제1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용되지 않은 파일들까지 무단으로 포렌식 분석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범 중 한 명의 휴대전화에서 성관계 영상이 발견됐고, 수사기관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 전원을 성범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확보한 영상 자료와 피고인들의 자백 진술 등을 근거로, A씨에게 징역 5년, B씨에게 징역 4년 6개월, C·D씨에게는 각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양형 부당을, 피고인들은 사실오인과 양형 부당을 이유로 각각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증거의 수집 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있었다고 판단하며, 1심 판결을 전면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수사기관은 제1차 영장에서 압수가 허용되지 않은 휴대전화를 계속 보관한 채, 압수 대상 외 파일들을 무단으로 탐색하고 출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후 별도로 제2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해도, 이는 최초 위법 수사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한 절차에 해당해 위법성이 치유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제2차 영장에 따른 디지털 분석 과정에서도 피압수자인 피고인들에게 형사소송법상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도 위법 사유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적법하게 압수된 저장매체라 하더라도, 압수 대상 외의 파일을 분석하려면 별도의 영장이 필요하다”며 “이를 거치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확보된 피고인의 진술 역시 자발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 진술은 위법하게 확보된 정보에 기초한 수사기관의 추궁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독립된 자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자백 진술과 관련 대화 내용까지도 모두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밝혔다.

 

결국 항소심은 디지털 자료와 자백 진술 등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전면 배제하고,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거나, 압수수색 범위를 벗어난 무차별적 분석이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수사 초기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절차의 적법성을 점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