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시흥경찰서 실종수사팀은 말 그대로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형사 C는 실종수사팀의 팀장으로 연일 쏟아지는 청소년, 부녀자 실종 신고로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해 3월 18일, 형사 C는 잊지 못할 한 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신고자는 중년의 남성 B 씨, 별거 중인 아내 A 씨가 실종됐다는 신고였다. B 씨 말에 따르면, 그가 아내 A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3월 13일 새벽 인천시 계양구 주택가 앞이었다. 두 사람은 별거 중이었고 이혼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B 씨는 이혼을 논의하기 위해 A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A 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수원에 살던 B 씨는 A 씨가 고의로 본인의 전화를 피한다고 생각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겨우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B 씨는 A 씨와 통화 후 본인의 트럭을 몰고 인천 계양구까지 달려갔다. 이혼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B 씨의 트럭을 타고 시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화는 말다툼으로 번졌고, 새벽 4시경 B 씨는 아내를 시흥시 중림사거리 근처에 내리게 한 뒤 그대로 떠났다고 진술했다. 그날 이후 4일이 흐를
2015년 가을, 필리핀 중부의 휴양지이자 무법지대로 불리는 앙헬레스. 이곳의 코리안데스크로 파견된 L 경감은 이 도시의 복판에서 벌어진 60대 한인 부동산업자 A 씨의 피살사건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초임 시절 형사팀에서 근무한 적은 있지만 그는 수사부서의 전문 경찰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 앙헬레스에 있는 이상 뛰어난 형사가 되어야만 했다. L 경감이 확보한 단서는 단 하나,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린 킬러의 몽타주였다. 킬러의 도주 경로도, 살해 지시자의 흔적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결국 L 경감은 과거 90년대의 형사들처럼 ‘발품’을 팔아 수사에 나섰다. L 경감은 A 씨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며 원한을 품을 만한 인물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교민사회 내에서 A 씨의 주변엔 ‘사방이 적’이었다. A 씨가 소유한 한인 대상의 호텔이 문제였다. 해당 호텔은 투자자를 모집해 수익금을 배분하는 구조였는데 A 씨의 사망 이후 호텔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진 상황이었다. 모두가 적이니 용의자 특정은 어려웠고, 코리안데스크로 온 L 경감이 혼자서 CCTV를 추적하거나 통신수사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현지
L 경감은 경찰이 된 이후 거침없는 승진 가도를 달려온 엘리트였다. 2015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경감으로 승진한 후 주변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그의 대학 동기들은 국정원에서 근무하거나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가끔 그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L 경감은 늘 도전과 모험을 꿈꿨다. 경찰이 된 후엔 승진과 성과가 최대의 모험이라 생각했지만 너무 이른 성공은 오히려 그의 갈증을 키웠다. 더 크고, 낯선 세계로의 도전이 필요해졌다. 새로운 목표를 찾아 나선 L 경감은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학문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길을 끄는 공고 하나를 발견했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공고였다. 코리안데스크는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벌어지는 강력범죄를 전담해 필리핀 경찰과 공조수사를 펼치는 곳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필리핀에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급증했고, 이에 2010년부터는 마닐라에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하고 경감급 베테랑들이 현지에 파견되어 직접 사건 수사에 뛰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L 경감이 본 공고는 마닐라 쪽이 아닌
2018년 12월 25일, 사람들은 연인, 가족, 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었다. 도심은 캐롤로 가득했고 거리마다 반짝이는 전구와 붉은 리본이 도시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평화로움도 잠시, 하늘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그건 하얀 눈이 아니라 연기였다. 김해시청 뒤편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진해졌고, 어느덧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멈춘 곳은 시내에서 불과 500미터에서 떨어진 김해시 구산동 분성산이었다. 다행히 헬기 6대가 곧바로 출동해 불길을 잡았지만 갑자기 발생한 산불은 시가 2,200여만 원 상당의 소나무를 소훼시켰다. 분성산은 형사 K가 근무하는 김해중부경찰서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닷새 후, 분성산에서 또다시 불길이 올라왔다. 야간 산불은 낮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헬기와 소방차 출동이 어려웠고 두 번째 산불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지만, 형사 K는 같은 장소에서 닷새 간격으로 벌어진 산불에 방화를 의심했다. 형사 K는 팀원들과 시청 공무원과 함께 분성산 일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7월 2일 오전 충남 당진경찰서, 강력2팀의 형사 C는 긴급통신영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살해당한 두 자매 A 씨와 B 씨, 그리고 동생 A 씨의 연인이자 살인 용의자인 D 씨의 휴대폰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각까지도 형사들은 D 씨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형사들은 두 자매의 카드내역 확인을 위해 금융계좌 압수수색영장도 신청했다. 형사들은 세 사람의 통화내역과 자매의 카드 사용기록을 확인하면서 범인의 동선을 추적할 계획이었다. D 씨가 두 자매의 신용카드를 훔쳐 간 상태였기 때문에 도피 중 해당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거나 결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베테랑 형사들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6월 26일 새벽 4시경 당진시의 한 편의점 ATM 기계에서 언니 B 씨 명의의 체크카드에서 30만 원이 인출된 기록이 확인됐다. 그리고 같은 날 대전에서 D 씨는 또 다른 ATM 기계에서 300만 원을 인출했다. 범인이 당진에서 범행 직후 곧바로 대전으로 도주했다는 증거였다. D 씨의 움직임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7월 1일 밤 11시경에 D 씨는 다시 당진시의 한 은행으로 돌아와 129만 원을 추가로 인출해갔다. 당진경찰서 강력2팀 형사들은 재빨리 움직였
충남 당진경찰서 강력2팀 형사 C에게 2020년 7월 2일 자정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온 건 송산면 변사 현장으로 출동한 형사팀이었다. 현장에서 두 자매의 사체가 발견됐다며 빨리 현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살인사건이었다. 형사 C는 강력2팀 팀장과 막내 형사와 함께 서둘러 현장으로 이동했다. 강력2팀이 있던 당진경찰서와 사건 현장이 있던 송산면까지는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짧은 이동 거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형사 C는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고, 쉽지 않은 심각한 사건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형사 C는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한 뒤 동료 형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 멈췄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끈적한 공기와 함께 강렬한 악취가 밀려들었다. 변사 사건을 많이 겪어본 형사들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견디기 힘든 냄새였다. 악취는 열려 있는 현관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였다. 형사 C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료 형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형사 C는 그 냄새만으로 사체의 부패가 심하다는 걸 알
경기도 성남시 수정경찰서 강력반에서 형사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30년 차 베테랑이 된 형사 J는 90년대 막내 형사 생활을 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눈앞에 있던 살인범에게 칼부림을 당했던 기억 때문이다. 사건의 시작은 성남시 종합시장 인근의 한 허름한 모텔에서 시작됐다. 당시 감식 교육을 받기 위해 경찰중앙학교에 있던 형사 J는 반장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형사 J가 마주한 현장은 처참했다. 모텔방 한가운데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칼로 38군데를 찔린 시신에서 흐른 피가 방바닥을 넘어 신발장까지 적시고 있었다. 살인의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해당 모텔은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었다. 불법 도박장을 함께 운영하던 이곳에서 판돈을 잃어버린 도박꾼이 모텔 주인에게 돈을 꾸려다가 주인이 거절하자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했던 것이다. 막내 형사였던 형사 J는 팀원들과 함께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추적 끝에 형사들은 살인범이 의정부의 한 지인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사팀 전원은 곧바로 의정부로 향했다. 검거작전을 앞둔 형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살인범이 칼을 들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진주 덕진경찰서 강력3팀은 고준희 양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친부 A 씨, 그의 동거녀 B 씨, B 씨의 어머니 C 씨의 통화내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과정에서 수사팀의 눈길을 끄는 두 가지 통화가 발견됐다. 첫 번째는 이들이 2017년 4월 29일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B 씨가 하동의 한 펜션에 걸었던 예약전화였다. 수사팀은 해당 펜션에 연락해 예약장부를 확인했다. 이날 B 씨가 예약한 인원은 어른 셋, 아이 하나. 그러나 단 두 시간 뒤에 같은 펜션으로 C 씨가 전화를 걸어 어른 셋, 아이 둘로 예약 인원을 변경했다. 강력 3팀의 P 팀장과 강력반 L 형사는 예약 인원 변경에 주목했다. 어쩌면 처음에는 고준희 양을 깜빡 잊고 빼놓았다가 다시 예약을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형사는 실제로 당시 고준희 양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통화 기록이 있었다. 4월 27일 깊은 밤이었던 02시 22분경 A 씨와 C 씨가 짧은 통화를 했다. 단순한 안부였다고 해도 늦은 시간에 통화를 한 것이 수상했다. 하지만 더 수상했던 건 기지국의 위치였다. 두 사람이 전화통화를 했던 장소가 A 씨가 살던 전북 완주나 C 씨의 거주지였던
2017년,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 강력3팀의 P 팀장과 L 형사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을 만났다. 다섯 살 어린이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의 젊은 P 팀장과 베테랑 형사였던 L 형사는 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아이의 이름은 고준희, 사건의 시작은 고준희 양의 아버지 A 씨(남성, 30대 중반)와 그의 동거녀 B 씨(여성, 30대 중반)의 실종 신고였다. 2017년 12월 8일 오후 1시, 전북 전주 아중지구대를 두 남녀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제발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A 씨와 동거녀 B 씨였다. 5세였던 딸 고준희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실종된 시점이 한 달이나 지나있을 때였다. 사건을 접수한 전주 덕진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실종된 고준희 양이 살던 곳부터 확인했다. 고 양은 친부의 동거녀였던 B 씨의 어머니 C 씨(여성, 60대 초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수사팀은 고준희 양이 살던 빌라 주변 CCTV부터 순차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날 덕진경찰서 강력3팀 P 팀장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종일 올리는 수사팀의 메시지로 마음 편히 쉴 수는
목포해양경찰서 외사계 형사 M이 그 첩보를 처음 들은 건 2021년이었다. 첩보의 주요 내용은 “캔디”. 달콤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불법체류 중인 베트남 노동자들 사이에서 마약 ‘엑스터시’가 돌고 있었고 캔디는 엑스터시를 일컫는 은어였다. 형사 M은 첩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형사 M은 먼저 마약공급책을 노렸다. 목포를 포함해 전남 서부 지역 일대에 마약을 퍼뜨리는 인물이었다. 형사 M은 어렵게 목포 구시가지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A 씨(남성, 20대 중반)의 SNS를 알아내고 그의 얼굴을 특정했다. 하지만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인 만큼 거주지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형사 M과 동료 형사들은 현장 잠복을 시작했다. 형사들은 목포 구시가지 골목에 몸을 숨기고 A 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며칠, 드디어 A 씨를 발견했다. 형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그의 뒤를 밟았고 A 씨의 거주지로 보이는 곳도 확인했다. 형사 M은 A 씨의 체포영장을 갖고 있었지만 디데이를 기다렸다. A 씨가 마약을 거래하는 현장에서 체포해야 구속을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떤 형사 M에게 뜻밖의 제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