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기 조직에 가담했다가 구금된 한국인 64명이 지난 18일 전세기를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현지에서 납치·감금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이들을 ‘피해자’로 볼 것인지 ‘가해자’로 볼 것인지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보이스피싱 가해자이자 감금 피해자’일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그러나 최근 유사 사건의 판결 흐름을 보면, 감금·협박 피해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더시사법률》이 ‘엘박스 리컬테크’를 통해 최근 2년간 ‘캄보디아 감금·협박 피해’를 주장한 사건 5건을 분석한 결과, 4건은 실형이 선고됐고 1건만 집행유예였다. 형량은 징역 2~4년으로 대부분 중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자발적 출국 여부, 폭행·협박의 객관적 증거, 탈출 및 신고 가능성, 휴대전화 사용 여부 등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특히 숙소 문이 잠기지 않았거나 외부 통신이 가능했다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난 4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캄보디아에서 조직원들에게 감금·감시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고액 수당을 위해 자발적으로 출국한 점, 폭행·협박의 객관적 자료가 없는 점, 다른 조직원이 탈출에 성공한 사례,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했던 정황 등을 근거로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처한 상황이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며 “형법 제12조의 ‘저항할 수 없는 폭력’ 또는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강요된 행위’ 주장은 배척됐고, 피고인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다.
형법 제12조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생명·신체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조항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해 왔다.
대법원은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 육체적 강제뿐 아니라 윤리적 강요까지 포함되더라도 사회통념상 다른 선택이 전혀 불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요건으로 본다(대법원 2007.6.29. 선고 2007도3306 판결).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단순한 감시나 언어적 협박, 경제적 압박 정도로는 강요된 행위로 인정되기 어렵다”며 “감금이 실제 물리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외부 연락이 불가능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증거로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2025고단264 사건에서 감금 정황을 일부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계기 설치·관리책으로 가담했으나, 범행 기간이 2~3일에 불과했고 초범이었다. 무엇보다 피고인이 과거 캄보디아 현지에서 동일 조직에 속아 실제 감금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이전 감금 경험으로 인해 피고인이 범행 가담 당시 심리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점은 참작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자발적으로 범행을 중단하거나 신고한 정황은 없어 책임을 전적으로 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피고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이 선고됐다.
한편 현재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을 하다가 검거되어 수형 중인 한 제보자는 "일부 ‘감금 피해’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며 자발적으로 출국해 통장을 팔거나 보이스피싱 조직에 참여했다”며 “이후 수사망이 좁혀지면 대사관이나 경찰에 ‘감금당했다’고 신고하라는 식의 내부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감금 신고 매뉴얼’은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전파한 일종의 방어 매뉴얼로, “먼저 대사관에 들어가 납치·감금 피해를 신고하고, 이후 조사 때는 ‘고수익 알바에 속았다’고 진술하라”는 구체적 대응법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제보자의 설명이다.
박변호사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협박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형사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다만 실제 감금 정황이 일부 인정될 경우 양형 단계에서만 감경 사유를 다퉈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출국 전 불법 인식 여부, 현지 역할, 이익 규모, 피해자 수, 전과 유무가 형량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송환된 64명에 대한 재판에서도 법원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