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느는데 보수는 제자리…제도가 키운 ‘불성실 국선변호’

국선변호 사건 5년 연속 ‘증가세’
강력범죄 등 고난도 사건은 집중
국회 무산‧법원행정처 집행 엇박
누적된 한계, 당사자에게도 영향

 

국선변호인의 불성실 변호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에 과중한 사건 부담과 열악한 처우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선변호 사건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예산과 보수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재판 당사자의 실질적인 방어권 보장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에 2026년도 국선변호사 보수 관련 결정을 통지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2월 대법관 회의를 열어 일반 국선변호인의 기본 보수를 사건당 55만원으로 유지하기로 의결했다.

 

변협과 국선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보수 증액을 요구해 왔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이번에도 보수는 동결됐다.

 

이 같은 보수 구조는 결국 국선변호인의 업무 여건 악화로 이어지고 그 부담이 재판 당사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제보자는 <더시사법률>에 “국선변호인이 의뢰인이 너무 많아 사건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이전 국선변호인도 담당 사건이 너무 많아 기록을 세밀하게 검토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전했다.

 

국선변호인의 불성실 변호 문제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앞서 본지는 수형자와 가족들 사이에서 국선변호인의 문제에 대해 제기된 불만을 보도한 바 있다. 한 수형자는 “국선변호인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고 접견도 한 차례도 오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가족들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불친절하다”는 문제를 잇따라 제기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개별 국선변호인의 태도나 책임으로만 환원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건 수는 급증하는 반면 보수는 장기간 동결돼 있고 수임료 지급마저 지연되는 구조 속에서 국선변호인이 개별 사건에 충분한 시간과 역량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선변호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 수는 2020년 12만 7232명, 2021년 11만 9816명, 2022년 12만 2541명, 2023년 13만 6792명, 2024년 14만 9346명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2024년 전체 형사 사건 공판 피고인이 총 34만 7292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가운데 43%를 국선변호인이 담당했다.

 

업무 강도 역시 상당하다. 국선변호인은 통상 구속 사건이나 강력범죄 등 난이도가 높은 형사 사건을 주로 맡는다. 다른 변호인이 재판 당사자와의 의사소통 문제로 사임한 사건을 이어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국선변호인들은 통상 한 달에 20~30건의 사건을 새로 배당받고 난이도가 높은 사건이 누적되면서 실제 재판 출석과 기록 검토 부담은 더욱 커진다.

 

국선변호인은 크게 ‘국선전담변호사’와 ‘일반국선변호인’으로 나뉜다.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과 2년 단위 위촉계약을 맺고 국선 사건만을 전담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이들의 월 보수는 세전 기준 600만~800만원 수준으로 2008년 이후 사실상 동결돼 있다.

 

또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변호사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 급여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월 60만원의 운영비가 지급되지만 직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사비 투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국선변호인은 개업 변호사가 사건별로 국선 사건을 맡는 방식이다. 1·2·3심 형사 사건 등 심급별로 보수를 받으며, 현재 기본 보수는 사건당 55만원 선이다.

 

그간 국회에서도 보수 인상 논의는 이어져 왔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추미애)는 일반 국선변호인 기본 보수를 55만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하고 2008년 이후 동결된 국선전담변호사 보수를 100만원 인상하는 내용과 사무실 운영비 증액을 담은 예산안을 심사해 통과시켰다.

 

당시 변협은 환영 입장을 밝히며 반복적인 보수 지급 연체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못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실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일반국선변호인 수임료 연체액은 87억6866만원에 달했다.

 

법원행정처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각급 법원의 집행 잔액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여건은 국선변호인 지원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15.2대 1에 달했던 지원 경쟁률은 지난해 평균 3.3대 1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보수는 동결된 데다 지급 체계마저 불안정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역할과 책임을 떠안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장에서는 국선변호 제도가 흔들릴 경우 그 피해가 재판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선변호는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사법 안전망이지만 예산과 처우가 뒷받침되지 않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제도의 실효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법무법인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의 불성실 변호 문제를 개별 변호사의 윤리나 태도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현재의 여건에서는 국선변호인이 한 사건에 충분한 시간을 배정하기 어렵고 그 부담이 누적될수록 변론의 밀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선변호 제도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어떤 부담을 안고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