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얼굴에 스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분명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가끔은 왜 사는지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게 됩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어머님마저 먼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교정직원에게 전해 들을 당시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 그분의 기일과 어머님이 가신 날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은 살아오면서 처음 겪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고, 한동안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노하셔서 제게 외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죽는 그날까지!” 그날 이후로 저는 그 분노 가득한 음성을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이제 저는 저로 인해 돌아가신 그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그 숨이 끊기는 듯한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365분의 1의 확률입니다. 저는 이제 죄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죄의 무서움을
어머니, 이곳에 와서 벌써 네 번째 맞는 겨울입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지나고 보니 언제 이렇게나 되었나 싶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십 중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제 모습을 보니 어머니께 죄송스럽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 이제 9개월가량 남은 수용생활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습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항상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범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 그동안 속만 썩이고 고생시켜 드린 어머니께 열심히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 올림.
2026년 현재, 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2년째 복역 중이다. 거기에 잘못 얽힌 건이 하나 더 있어 추가 건 재판도 받고 있다. 나의 잘못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두 흩어지고 사라졌다. 나는 벌써 세 번째 이곳에 발을 들이밀었다. 첫 징역살이 때는 모든 행복이 근처에 있었다. 결혼도 하고, 하던 일이 잘 풀리는 듯싶었다. 그러나 2017년 2월 2일 파견된 형사에게 붙잡히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렇게 3년 형을 선고받고 어머니께 많은 투정을 부렸다. 당시엔 사회에서 쓰는 칫솔이 교도소 내로 반입 가능했었다. 그때 나는 카카오프렌즈 칫솔이 갖고 싶었고, 접견 오신 부모님께 당장 내일 그 칫솔을 넣어달라고 애걸복걸했었다. 장성급 장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간을 내기 힘든 분들이었지만, 내 고집에 그 다음 날 병가를 내고 아침 9시 접견 시간까지 칫솔을 구해다 주시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칫솔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이틀 뒤 관구실에서 나를 불렀다. ‘부모 사망’이라는 쪽지를 넘겨받았는데, 솔직히 슬프지도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발인 날이 다가왔고, 친누나의 보증 덕에 구치소를 잠시 나올 수 있었다.
1심 재판 선고를 받은 후 감옥으로 돌아오는 교정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의 모습은 마치 별세계처럼 낯설었다. 재판을 받고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서글펐다. 감옥의 담벼락이 세상과 우리를 갈라놓듯이, 바깥에 있는 일반 사람들은 교정버스 안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누구의 가족인지는 몰라도, 추운 겨울날 법원 정문에 서서 절대로 보이지 않을 교정버스 안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잘못으로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일시적으로 자유를 빼앗겼으나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정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하얀 눈이 녹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슬펐다. 이곳에서 보내야 할 남은 시간들은 분명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간다. 지금은 혼자라서 아무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 왠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도 들지만, 선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절대로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올해를 감옥에서 보내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미결수입니다. 힘든 수감생활 중에 저희 오빠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읽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네요. 한 방에 수감 중인 언니가 보고 있는 <더시사법률> 신문을 같이 보는데, 많은 걸 배우고 깨닫고 또 뉘우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밖에 있는 가족들이 안에 있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마음에 많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오빠가 보낸 편지도 신문에 실어주실 수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 다른 독자분들도 함께 읽고 마음의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그곳에서 마음고생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감방 밖에 있는 몸이라지만 내 마음 역시 감방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보다 네 이름을 더 크게 부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웠던 네가, 이제는 시간표 안에서 숨 쉬고 있다니. 밤마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들어라. 너는 죄로만 묶인 사람이 아니다. 실수를 했을 뿐이고, 넘어졌을 뿐이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벽은 너를 가두지만 너의 내일까지는 가두지 못한다. 사람은 어두운 데에서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 동생아, 지금은 하루가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조그맣고 나를 닮은 너를 두고 난 무책임하게 집을 나와버렸지. 본래 1년의 별거를 약속했지만, 세월은 기약 없이 10년이나 흘러버렸다. 달력을 헤아려 보니 벌써 너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더구나. 이곳에 와서 네 또래 정도 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리 마음이 가는지…. 은연중에 나는 너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밖에 있을 땐 뭔가 준비가 되어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벌써 다른 가정을 꾸렸는데 내가 나타나면 마음의 상처를 후벼파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 또 지금의 내 초라한 행색으로 인해 서로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젠 모든 걱정을 다 걷어버리고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단다. 내성적으로 자란 탓에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혼란을 많이 겪었어. 그런 전철을 밟아보았기에 이혼만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혼자만의 다짐으로 되는 것은 아니더구나. 훗날 아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너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도 가슴
함께 수감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접견실 유리 너머로 내 모습을 보며 펑펑 울더라고….” 하는 짠한 경험담이 그것이다. 사회에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교정시설에 들어간 것이 그만큼 큰 비극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하긴, 어찌 보면 사는 동안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비극 중 죽음 다음으로 큰 비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정시설에 있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루는 의료과에 가려고 나왔는데, 이미 같은 사동의 다른 재소자 한 분이 먼저 나와 계셨다. 덥수룩한 수염, 불안한 눈빛.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공황장애와 조현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나 또한 양극성정동장애와 공황장애로 긴 시간 고생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쓰여 의료과에 다녀오는 내내 챙겨 주게 됐다. 거실로 돌아가던 중 문득 나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마음가짐이 떠올라 한마디 건네 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을 뗐다. “…○○씨, 생각을 바꾸면 좀 괜찮아져요. 잘 생각해 봐요. 여기 생활이 뭣 같고, 오고 싶어서 온 곳은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용자입니다. 창간 이후부터 꾸준히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열혈 독자입니다. 유익한 정보도 많고, 늘 수용자 입장을 대변해 주셔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를 살려주신 교도관님 한 분께 감사함을 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5년 6월에 구속되어 수감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중점 관리 대상자입니다.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제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경주교도소에 있을 당시 수면제를 털어 넣고 극단적 시도를 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는 위급했기에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자신을 보면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져 비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만난 함수호 계장님은 그런 제게 은인이 되어주셨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계장님은 저뿐만 아니라 고민이 있는 수용자들이 있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항상 수용자 편에 서서 도와주십니다. 관구 팀장님이라 항상 바쁘신데도 도움을 요청하면 제
제 나이 어느덧 오십 줄입니다. 남들은 일궈놓은 삶을 갈무리할 나이라는데 저는 여태 철없던 시절에 멈춰버린 머릿속 시계를 탓하며 이곳에 갇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천덕꾸러기였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세상에 대한 원망만 손에 움켜쥔 채 비겁하게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매번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술의 노예가 되어 남의 소중한 재물을 파손하고, 고작 얼마 안 되는 돈에 제 인생을 통째로 맞바꾸는 짓을 반복했습니다. 삶이 힘들다는 핑계로 마신 술이 제 영혼을 갉아먹는 동안 저 때문에 눈물 흘리고 상처 입었을 피해자들의 마음은 단 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벌써 전과가 열 번을 넘어갑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담장 안팎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저 자신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가족과 연을 끊은 지도 11년, 이제 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텅 빈 운동장에서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이 처절한 외로움마저도, 실은 제가 뿌린 씨앗이 거둔 당연한 결과임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낍니다. 염치없게도 누군가 제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과분한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망가뜨린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원주교도소에서 수감 생활 중인 한 수형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학대와 단절된 가족 관계 속에서 저를 찾아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고립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타인과 유대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이곳에서도 수용자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도움을 청하는 일이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같습니다. 불우 수용자를 돕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저보다 연로하고 힘든 분들이 많다는 생각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혼자 참아왔습니다. 하지만 올겨울의 추위는 유독 시리고 가혹합니다. 생수 한 병 마음 편히 마시지 못하고 제 이름으로 된 이불 한 장 없이 밤마다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할 때면, 육체적인 추위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막막한 마음에 지인의 권유를 떠올려 염치불구하고 더시사법률에 제 사연과 짧은 시 한 편을 보냅니다. 터널의 끝을 기다리며 과거, 나의 잘못으로 갇혀버린 나. 현재, 후회하며 그 무게를 견디는 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같아 차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과거의 그릇된 결정이 현재의 불행을 낳았고, 오늘의 초라한 모습에 내일마저 어두워 보이네. 과연 이 긴 터널에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