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생활을 하다 보면 모범적이고 성실한 수용자들의 모습에 뿌듯할 때도 많지만 수용자의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긴장해야 할 때도 있다. 수용자의 행동이 예측 불가한 만큼, 그때마다 교도관들의 상황판단도 민첩해야 더 큰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른바 ‘니코틴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위해 미결 수용되어 있던 W의 사건은 <용감한 형사들>을 포함해 여러 방송에서 다룰 만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2017년 당시 21살이었던 W가 자신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19살이었던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고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여행 첫날 아내가 사망하며 밝혀진 사건이다. 이 사건은 W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니코틴 원액을 여성의 혈관 내에 주사했고 여성이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W가 일기장에 써놓은 버킷리스트에는 00살까지 00억 만들기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이 어린 여성의 생명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는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사건이었고 죄질이 아주 나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황이었다. 교도소에 들어온 후 W는 중독
겨울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던 그날 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목소리의 노년 여성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여성의 아들은 음주운전 재범이었다. 이미 두 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판사가 크게 호통을 치고 검사 또한 구형을 강하게 하여 실형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사건이 변호사 없이 진행된 채 이미 판결 선고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내게 연락해왔다. 사건 기록을 검토해보니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제출한 반성문이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을 부모의 마음은 알지만 반성문 내용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변론의 논리를 흐트러뜨릴 위험이 있었으며, 특히 몇몇 문구가 자식을 감싸려는 변명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선처를 구하는데 있어서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닌 법적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쳐야 했다. 나는 가능한 전략을 검토하며 밤을 새웠고 변론재개 신청을 했다. 다행히 변론재개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나는 즉시 움직였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와의 합의였다. 나는 어머님과 수차례 상담하며 합의 과정에
변호사 개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맡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폰지 사기 사건’ 이었다. 이 사건은 해외 투자로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한 금융 사기 사건이었다. 피해 규모가 수백억 원에 달했다. 경찰은 투자 설명회를 급습했다. 현장에 있던 회사 대표와 중간 간부들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내가 변호인 선임서를 제출하고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가 끝난 상태였다. 피해자의 수도 많았고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컸다.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피해 규모가 큰 만큼 피의자들이 구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이미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대형 금융 사기’로 규정하고 투자 구조가 폰지 사기로 판명된 이상, 사실관계를 부정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럴 땐 법리적 다툼이 주된 변론 방식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건은 이미 장기간 수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이 변론의 핵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행범 체포의 요건과 그 해석의 엄격함을 강조하며 변론을 전개했다. “투자 설명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피의자 접견을 가는 날이다. 서초동 사무실에서부터 차를 직접 운전해서 예술의 전당 앞 지하 터널로 파고들어 과천을 관통한 다음 인덕원역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틀어 의왕으로 향한다. 구치소 주소는 네비게이션이나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면 적이 우리나라를 교란시키기 위해 교도소 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위치는 보안 사항이다. 원래는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외곽으로 접어들면 소풍을 가는 것처럼 기분이 들뜨지만, 구치소에 가는 길 위에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묵직한 자동차처럼 착 가라앉는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을 가장 실감할 때가 구치소로 접견하러 갈 때다. 접견은 오로지 변호사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도, 검사도, 대통령도, 가족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면 구치소 입구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트 밖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하지만, 내가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 바리케이트가 올라가고 차를 구치소 뜰 안에 주차할 수 있다. 수용자(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가족조차 하루에 면회는 10분만 가능하지만 변호사는 원칙상 시간 제한 없이 접견이 가능하다. 주차를 하고 구치소 입구에서 변호인이 들어가는 창구로
2017년,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 강력3팀의 P 팀장과 L 형사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을 만났다. 다섯 살 어린이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의 젊은 P 팀장과 베테랑 형사였던 L 형사는 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아이의 이름은 고준희, 사건의 시작은 고준희 양의 아버지 A 씨(남성, 30대 중반)와 그의 동거녀 B 씨(여성, 30대 중반)의 실종 신고였다. 2017년 12월 8일 오후 1시, 전북 전주 아중지구대를 두 남녀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제발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A 씨와 동거녀 B 씨였다. 5세였던 딸 고준희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실종된 시점이 한 달이나 지나있을 때였다. 사건을 접수한 전주 덕진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실종된 고준희 양이 살던 곳부터 확인했다. 고 양은 친부의 동거녀였던 B 씨의 어머니 C 씨(여성, 60대 초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수사팀은 고준희 양이 살던 빌라 주변 CCTV부터 순차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날 덕진경찰서 강력3팀 P 팀장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종일 올리는 수사팀의 메시지로 마음 편히 쉴 수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에 대한 최근의 판결 경향을 보면, 대부분 유죄가 선고되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하면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피고인이 실제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속아 현금수거책으로 이용되었음에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늘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억울하게 실형을 받지 않고 무죄를 받을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사기 범행의 방조범으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범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이를 돕겠다는 의사가 있었음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한다. 검사가 피고인의 고의를 적극 입증하지 못하면, 단순한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그래서 미필적 고의 부재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미필적 고의의 부재 입증을 어떻게 하면 될까? 여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① 신분 및 개인정보 적극 제공 피고인이 구인 광고를 통해 일자리를 찾았고, 업체에 자신의 운전면허증, 주민등록등본, 이력서 등을 제공하며 자신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범죄 가담자라면 개인정
2017년 8월 29일 자 뉴스에 이런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네가 모셔라” 자식 다툼에 흉기 휘두른 90대 아버지.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90대의 노인이 자신의 부양 문제를 놓고 다투는 딸들을 보고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노인(당시 95세)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큰딸 집에 모인 자식들 중 큰딸과 막내딸이 자신을 부양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자 막내딸의 뺨을 때리고 허리춤에 숨겨 둔 흉기로 싸움을 말리는 막냇사위의 목과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다행히 막냇사위는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 살던 노인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부양 문제를 두고 딸들 간에 평소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특히 노인이 막내딸 집에 머무는 동안 딸이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해 막내딸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해코지를 당할까 봐 방어 차원에서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라고 경찰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은 현장에 있던 가족 중 한 명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용되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내가
목포해양경찰서 외사계 형사 M이 그 첩보를 처음 들은 건 2021년이었다. 첩보의 주요 내용은 “캔디”. 달콤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불법체류 중인 베트남 노동자들 사이에서 마약 ‘엑스터시’가 돌고 있었고 캔디는 엑스터시를 일컫는 은어였다. 형사 M은 첩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형사 M은 먼저 마약공급책을 노렸다. 목포를 포함해 전남 서부 지역 일대에 마약을 퍼뜨리는 인물이었다. 형사 M은 어렵게 목포 구시가지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A 씨(남성, 20대 중반)의 SNS를 알아내고 그의 얼굴을 특정했다. 하지만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인 만큼 거주지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형사 M과 동료 형사들은 현장 잠복을 시작했다. 형사들은 목포 구시가지 골목에 몸을 숨기고 A 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며칠, 드디어 A 씨를 발견했다. 형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그의 뒤를 밟았고 A 씨의 거주지로 보이는 곳도 확인했다. 형사 M은 A 씨의 체포영장을 갖고 있었지만 디데이를 기다렸다. A 씨가 마약을 거래하는 현장에서 체포해야 구속을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떤 형사 M에게 뜻밖의 제보가 들어왔다.
오전 7시,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지원을 요청한다는 무전을 받았다. 아침부터 미지정 사동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몇 년 전 내가 미지정 사동을 담당할 때 데리고 있던 30대 후반의 J였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수용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던 J가 싸움을,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수용자 C와 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있었고 C가 J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한마디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말에 J가 C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J답지는 않은 행동이었다. J가 아버지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가 보육원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C가 며칠 전에도 J에게 “너 보육원 출신이냐?”고 물어봐 기분이 나쁘던 차에 애비 없는 자식 소리까지 나오자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J의 이름을 부르며 “너 답지 않게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보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J가 사과를 하고 싶다 하고 C 역시 자식뻘 되는 놈 처벌받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는 팀장의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켰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J에
변호사 경력이 길지 않았던 때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조선족 아내 부부가 함께 구속되었다. 혐의는 보이스피싱. 두 사람을 처음 접견하던 날, 남편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변호사님, 보이스피싱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그냥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을 뿐이에요.” 아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오열을 할 뿐이었다. 아내가 환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환전소에서 사용하던 통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었고, 입금된 돈을 중국의 다른 통장으로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보낸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된 것으로 보였다. 겉보기에 부부의 사연은 영락없는 보이스피싱 범행이었다.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은 점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 피해자를 속이는 사람,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사람, 그리고 피해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는 사람까지 모두 각기 따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특히 인출책이나 송금책의 경우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본인이 정확히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형사 소송에서 범행의 고의는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이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