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철창 너머 부모님’ 만나려 여행길 오르는 아이들

수용자 자녀 서사 담은 미술 전시
김유나 작가 회화 작품 16점 기증
4월 10일까지 사전신청 후 관람 가능

 

“일부러 교복을 입고 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바꿔 입으며 갔습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왕복 6시간 여정도, 교도소에 있는 엄마를 만날 생각에 설렘이 됐습니다"

 

몇 번이고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 닿는 길이 있다. 평일에는 학교를 가야 하고, 수만 원씩 드는 교통비도 마련하기 어렵다. 동행할 사람이 없어 면회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수용자 자녀들에게 면회길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아빠에게 가는 여정>이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사옥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청년부터 어린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이 모였다. 오프닝 시간이 가까워지자 복도까지 인파가 들어찼다.


 아이들에게 면회길은 '용기가 필요한 시간'


오후 3시 시작된 행사에서는 그림 기증자 김유나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 작가는 “가는 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자 객석 곳곳에서 “울지마”라는 응원이 이어졌다.

 

세움 이경림 대표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길 바란다”며 “이번 전시가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행사 도중 전시에 참여한 수용자 자녀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엄마는 청주에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벽에 걸린 그림은 면회 경험을 담은 것”이라며 작품을 가리켰다.

 

그는 과거를 차분히 떠올렸다. “어릴 때는 엄마가 외국에 갔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늘 봄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교도소에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면서, 제 발로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슬픔보다 설렘이 묻어 있었다.


면회길, 접견실, 교정시설 직원...캔버스에 담긴 교도소


전시장에는 수용자 자녀의 경험과 교정시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걸렸다. 빽빽한 나무는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을, 그 사이를 지나가는 노란 버스는 이들을 돕는 ‘동행’을 의미한다.

 

테라스에는 꽃이 가득한 대형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김 작가는 “그림은 팔릴 수 있지만 벽화는 남는다”며 “아이들에게 오래 남는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는 교정시설의 모습도 담겼다. 흙을 나르는 인부는 교도소 직원, 천막 형태의 구조물은 접견실을 상징한다. 해설이 이어지자 관람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 감상이 진행되는 동안 판매된 그림 아래에는 빨간 스티커가 하나둘 붙었다. 세움 관계자는 “수익금은 수용자 자녀 면회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이들 여행길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동행'


이번 작업의 배경에 대해 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에서 편견을 겪으며 지낸 시간이 ‘가려진 아이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졌다”며 “언어가 서툴던 시절, 미술은 말을 대신하는 탈출구였다”고 전했다.

 

또 작품 16점을 기증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작가는 “예술가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수용자 자녀들은 어른의 선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존재들”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담은 메시지는 ‘동행’이다. 김 작가는 “그림 속 캠핑카는 아이들이 타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라며 “교도소까지의 여정일 수도 있고, 삶 전체를 함께하는 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공감과 함께 현실 문제도 짚었다.

 

법무부 ‘2025 수용자 미성년 자녀 현황조사’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둔 수용자 9253명 중 45%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11.7%가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관계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수용자 10명 중 4명은 입소 이후 자녀와 직접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움 관계자는 “부모가 수감되면 수입이 끊기고 면회 교통비 부담도 커진다”며 “부모가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면서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