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나의 전 아내에게 (인천구치소)

 

친구로 시작해서 연인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 부족한 남편의 아내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에서는 빈틈없는 상사로 완벽에 가까웠던 당신.

 

유학 시절 똑부러지는 성격과 철저한 자기관리, 따뜻한 성품에 반해 내가 여러 번 매달린 끝에 우린 연 애를 했고, 1년 후엔 결혼까지 하게 됐지. 부모님께 절대 손 벌리지 말고, 우리 힘으로 살아내 보자는 생각은 당신이나 나나 같았어.

 

그래서 월셋집에 살며 밤낮없이 일했던 기억이 나. 그러다 전셋집으로, 자가로,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신도시 아파트로…. 그 집에 들어서던 날의 감격은 아직도 잊지 못해. 그랬던 우리에게 두 천사가 찾아와 주었고, 난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명감을 안은 채 육아와 가사는 뒤로 하고 사업에만 몰두하게 됐어.

 

그 결과 남들이 보기에는 여유 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됐지만, 결국 내 이기적인 결정과 행동에 당신이 힘들어졌다는 걸 몰랐어. 대학 시절, 유학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당신이었는데…. 그토록 노력 해서 겨우 결실을 맺은 당신의 직업적 커리어를 내가 육아라는 이름의 짐으로 짓눌러 버렸지. 그런데도 묵묵히 남편의 앞길을 응원하며 따라와 준 당신에게 감사와 미안함과 존경을 표하고 싶어.

 

최고의 가장은 모든 것을 금전적으로 보상해 주는 사람 이라고 착각했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힘든 일은 내색도 상의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오판했어. 그러다 찾아온 생의 가장 큰 고비를 넘지 못했고, 결국 차디찬 창살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는 게 전부인 이곳에 갇혀 어느새 반년이 넘게 지내고 있어.

 

무슨 자존심이 그리 셌을까? 구속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당신에게 난 곧바로 이혼이라는… 이전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카드를 꺼내 들었고, 그렇게 신혼 때부터 이기적이었던 나는 당신과 마지막까지 이기적으로 끝을 냈어.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도, 일찌감치 찾아온 듯한 추위도 사실 나는 잘 모른 채 살고 있는 것 같아.

 

매일 당신과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만을 기도하고, 당신의 꿈과 미래가 모두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만을 간절히 응원 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해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주말마다 영화나 연극을 보며 문화생활을 했던 우리였기에 당신이 어디를 가든 자연스레 나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

 

그럴 때 아주 작은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으면 해. 나와 함께했던 곳에서 당신에게 또 다른 추억이 생겨 기쁜 기억으로 덧칠되길 진심으로 바랄게. 평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겠다고 굳게 약속한 건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부족했고 이기적이었던 나라는 사람을 아주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당신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함을 전합니다.

 

부부라는 연은 이제 끝이 났지만, 당신의 앞날에 찬란함만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