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기소도, 재판도, 선고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점, 처음 조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방향이 정해진다. 첫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질문에 어떤 태도로, 어떤 말로 응답했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의 ‘인식’이 형성된다.
이때 형성되는 것은 단순한 첫인상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점이며, 이후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종종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처음 어떻게 말했는가’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초기 진술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었는지에 따라 사건은 전혀 다르게 기록된다. 필자는 같은 상황이 어떤 사건에서는 계획적 범행으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우발적 상황으로 해석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 차이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초기 진술의 구성 방식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정리되지 않은 진술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사건의 방향을 고정해 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에 잘못 정리된 진술은 이후 아무리 보완해도 ‘사후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기 쉽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고 충분히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는 해명은 재판 단계에 이르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재판은 그 순간의 혼란을 고려하기보다 이미 남아있는 기록을 기준으로 판단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진술은 끝까지 사건을 따라다닌다.
반대로 처음부터 구조가 잡힌 사건은 다르다. 일부 표현이 바뀌거나 세부 설명이 추가되더라도 사건의 큰 틀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면 이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판부는 초기 진술을 기준점으로 삼아 이후의 모든 주장과 진술을 평가한다. 성범죄 사건에서 초기 대응이 곧 사건의 뼈대가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좋은 변호사’를 떠올릴 때 법정에서 말을 잘하는 모습을 먼저 생각한다. 논리를 세우고, 반대신문을 능숙하게 하며, 변론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에서는 다르다. 이미 구조가 굳어진 사건에서는 아무리 화려한 변론도 판을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범죄 사건에서의 좋은 변호사는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말을 줄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어디까지 말해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지금 꺼내야 할 이야기와 지금은 남겨두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구분해 주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구조를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억울하게 성범죄 사건에 휘말린 사람일수록 처음에는 설명을 하고 싶어 한다. 억울하기도 하고, 행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해를 살까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설명이 많아질수록 사건은 단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말이 많아지면 맥락이 흐트러지며, 의도와 다른 해석이 덧붙여지기 시작한다.
스스로는 ‘솔직함’으로 여긴 것이 수사와 재판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릴 수 있다. 해명이 오히려 불리한 정황으로 전환되는 사례를 필자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 설명이 사건을 풀어내는 열쇠가 될지, 아니면 자신을 옭아매는 끈이 될지는 초기에 어떤 변호사와 함께했는지에 달려 있다.
누군가 곁에서 말을 멈추게 해주고, 정리할 시간을 벌어주지 않는다면 사건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성범죄 사건은 중간에 방향을 바꾸기 어려운 사건이다. 처음 형성된 인식은 대부분 판결의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성범죄 사건에서 좋은 변호사는 재판장에서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조사 이전에 이미 사건을 정리해 둔 사람이다. 말을 아끼게 할 줄 알고, 설명을 미루게 할 줄 알며, 지금 필요한 것과 지금은 남겨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거 판사로서 수많은 사건의 끝을 보았고, 변호사가 되어 그 시작을 다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자리를 모두 거치며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언제’ 변호사를 선임하느냐가 아니다. 처음부터 누구와 함께하느냐다. 그 선택은 판결문에 직접 적히지는 않지만, 판결문 곳곳에 분명한 흔적이 되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