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범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다. 수사기관이나 법원 앞에 선 순간, 이 말은 일종의 방어 본능처럼 튀어나온다. 나 역시 그 말이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이 같은 주장만 반복해서는 결코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재판은 감정의 호소가 아니라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판단의 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사재판이 그렇듯, 성범죄 사건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거 기록의 철저한 검토다. 수사기관이 수개월에 걸쳐 수집한 기록들 속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 참고인의 말, 현장 상황, 사건 전후의 정황 등의 수많은 정보가 있다. 기본적으로 검사가 기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분히 기록을 검토했고, 그 기록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형사재판의 기본은 공소사실과 증거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에 있으나, 간혹 사건 속에는 수사기관조차 놓친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기도 하다. 피고인이 기억해 낸 사소한 정황, 공개되지 않은 메시지나 사진 한 장이 전체 사건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 발견은 결코 우연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