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상해·치상’ 조항의 해석 기준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 기본범죄가 미수에 그쳤더라도 그 실행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면, 결과적 가중범인 강간등치상죄의 기수로 처벌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 일행은 함께 술을 마시던 피해자 C씨의 동석자가 먼저 귀가하자 C씨를 성폭행할 의도로 인근 편의점에서 구입한 숙취 해소 음료에 B씨가 미리 소지하고 있던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넣어 마시게 한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숙박업소로 옮겼으나, 가족과 지인의 반복된 연락으로 범행은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약물 복용으로 일시적 의식 소실 등 상해를 입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강간등치상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 B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각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을 명했다.
쟁점은 ‘기본 범죄인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강간등치상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피고인 측은 강간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미수범 감경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에 의하면 특수강간의 죄를 범한 자뿐만 아니라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며 A씨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는 점과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한 점을 고려해 A씨에게 징역 5년, B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및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도 명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치상죄에서 기본범죄가 미수에 그쳤으나 중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 미수범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치상죄에서 기본범죄(예컨대 특수강간)가 기수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면 기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직접 문제 된 조항은 성폭력처벌법 제8조 제1항이다. 해당 규정은 제3조 제1항, 제4조, 제6조, 제7조 또는 그 미수범의 죄를 범한 사람이 타인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원합의체는 이 조문 구조에 비춰 기본범죄의 미수도 제8조 제1항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함께 검토된 조항은 성폭력처벌법 제15조(미수범)다. 사건 당시 구 성폭력처벌법은 제3조부터 제9조까지의 미수범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피고인 측은 이를 근거로 강간등치상에도 미수범 규정을 적용해 형을 감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원합의체는 형법과의 체계적 관계도 함께 살폈다. 형법 제25조는 범죄 실행에 착수했으나 행위를 마치지 못했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미수로 보고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 형법 제297조(강간), 제300조(미수범), 제301조(강간 등 상해·치상)는 강간 및 그 결과적 가중범의 처벌 구조를 두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 제8조 제1항에서 기본범죄가 미수라는 이유로 다시 미수범 규정을 적용해 감경할 경우, 형법상 강간치상죄와의 형량 체계에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례법상 범죄가 오히려 더 가볍게 처벌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수강간 실행에 착수했다가 중단됐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면 이미 강간등치상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은 충족된다”고 판단했다. 결과적 가중범의 경우 ‘중한 결과’가 발생한 이상, 기본행위가 기수인지 미수인지는 별도의 감경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다만 일부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제시했다. 성폭력처벌법 제15조의 문언상 강간등치상 역시 미수범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여지가 있고, 형벌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심스러울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도 근거로 들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결과적 가중범의 구조를 재확인한 것”이라며 “기본행위가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중한 결과가 현실화됐다면 기수범으로 본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수범 감경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의견 역시 형벌 체계상 의미 있는 문제 제기”라며 “입법적 정비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