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아내 살인’ 무기수… 20년 만의 재심 못 보고 세상 떠났다

아내 죽인 범인으로 몰린 남편
간접증거만으로 유죄 인정돼
네 번의 신청 끝에 재심 인용
형집행정지 날 지병으로 사망

네 번째 시도였다. 2003년 보험금을 노리고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장 모 씨는 ‘살인사건’이 아니라 ‘운전사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내를 죽인 아버지라는 오명을 쓰게 된 장 씨는 자녀들에게도 외면당한 채 무기수로 교도소에 갇히고 말았다. 장 씨는 재심을 신청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재심 사유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재심 결정이 내려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청구인은 원심 판결을 명백히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수사 절차에서 중대한 위법이 있었음도 입증해야 한다.


장 씨는 네 번째 도전 끝에 2022년 대법원으로부터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복역 중인 장기수가 재심 개시 인용을 받은 사례는 장 씨가 전국에서 두 번째였다.


사건은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 반이 넘었을 무렵 발생했다. 전남 진도군 송정저수지를 향해 달리던 1톤 트럭이 사라졌다. 운전자는 장 씨였고 조수석엔 아내 A 씨가 잠들어 있었다.

 

물에 빠진 트럭에서 장 씨는 스스로 빠져나왔지만, 아내는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된 후 끝내 사망했다.


사고 직후 장 씨는 “졸음운전을 했고 저수지에 추락한 순간에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발생 1년 전부터 장 씨 부부가 여러 건의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험 금액을 늘리고 있던 점을 확인하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 씨 부부가 가입한 보험은 9개로, 아내가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정될 경우 총 9억 3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장 씨의 자녀들이 돌연 아빠를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보험금을 타 내려 아빠가 엄마를 살해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장 씨의 고의 살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장 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장 씨를 불러 처음 조사한 날 곧바로 긴급체포했다. 기소 내용은 살인이었다.

 

장 씨는 일부 보험은 아내가 혼자 가입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심 법원에서 선고된 무기징역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며 장 씨는 무기수가 되었다.


장 씨는 자신이 아내 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된 직후부터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했다. 복역 중에 자필로 쓴 재심 청구서와 탄원서만 A4 용지 900여 쪽에 달한다.

 

세 번에 걸쳐 재심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그리고 2017년, 장 씨의 억울함을 알아본 이가 나타났다. 서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었던 전우상 전 경감이었다.


전 경감이 살펴보니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직접 증거가 없었음에도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간접증거를 유죄의 근거로 인정했다.

 

장 씨가 본인이 평소 복용하던 수면제를 아내에게 먹인 뒤 차량을 저수지에 빠뜨렸고, 탈출하려는 아내를 막아 익사시키고 본인은 탈출했다는 게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전 경감이 다시 조사한 결과 아내의 시신에선 수면제가 아닌 감기약이 발견되었을 뿐 타살을 의심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보험금의 경우 보험설계사가 장 씨 부부에게 가입을 권유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이 진술은 법적 판단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자녀들의 탄원서는 외가 어른들의 압력으로 작성된 위증임이 밝혀졌고, 경찰이 영장 없이 사고 트럭을 압수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3년에 걸친 전 경감의 조사로는 정 씨는 무죄가 분명했다.


전 경감의 도움으로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졌지만, 장 씨는 곧바로 출소하지 못했다.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형의 집행을 멈춰 달라는 신청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서다. 하필 그 사이 장 씨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시작했다.


2024년 4월 2일, 드디어 형집행정지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그날에도 그는 수갑을 벗지 못했다. 재심에 대한 희망으로 버티던 것도 잠시 장 씨는 독한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그날 오후 5시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누명을 벗겠다는 일념으로 20년 넘는 옥살이를 견딘 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장 씨의 재심 변호인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무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금전적 목적으로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과 세상의 오해를 풀어드리겠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