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6일, 서울 신정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20대 여성 A 씨는 현충일을 맞아 모처럼 집에서 쉬다 몸살 기운이 돌자 “약국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 뒤로 A 씨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A 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A 씨는 쌀 포대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서 쓴 채 배 쪽은 노끈으로 묶여 있었으며 얼굴엔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음부에 다른 생리대 두 개와 휴지가 넣어져 있어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정액 반응도, 타인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쓰레기 무단투기장에는 CCTV도 없었고,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1월, 두 번째 피해자가 발생했다. 40대 주부였던 B 씨가 신정역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사라졌다.
신정동 주택가 근처 쓰레기 무단투기장에 유기되어 있던 B 씨의 시신은 검은 비닐봉지와 대형 비닐봉지로 얼굴과 몸이 감싸져 있었고, 야외용 돗자리로 둘둘 말려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시신을 묶었던 끈은 모두 세 종류로 노끈, 전기선, 나일론 끈이었다. B 씨의 사인도 경부압박질식사였다.
6개월 사이에 한 동네에서 비슷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했지만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을 공산이 컸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C 씨가 겪었던 납치미수사건에서였다.
2006년 5월, 남자친구를 만나러 신정역 근처를 지나던 20대 여성 C 씨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C 씨 옆구리에 흉기를 들이대며 ‘소리를 지르면 죽이겠다’고 협박한 뒤 C 씨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자 이 남성은 “여자친구가 낮술을 마셨다”며 둘러댔다. C 씨는 눈이 가려진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C 씨가 끌려간 곳은 어느 주택의 반지하였다. 이곳에는 또 한 명의 남성이 있었다. “알아서 처리하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C 씨는 자신을 끌고 온 남성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다. 그녀가 반지하를 나와 처음 몸을 숨긴 곳은 해당 주택 2층의 신발장 뒤였다. 이후 범인들이 뒤쫓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온 것까지 확인한 C 씨는 그때부터 있는 힘을 다해 달려나가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이 이른바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불리게 된 건 바로 C 씨의 증언 때문이었다.
눈이 가려진 채 이동해 정확한 주택의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을 숨겼던 2층 신발장에 캐릭터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던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반지하방 바닥에 톱과 수많은 끈이 있었음을 증언했다. 이 사건을 끝으로 신정동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납치나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범인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2020년 1월, 15년간 미제로 남았던 이 사건을 새로운 목격자의 등장을 알리며 한 방송이 재조명했다. 목격자는 케이블 TV 전선 절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용의자를 마주쳤다는 D 씨였다. 부산 기장경찰서에서도 뜻밖의 제보를 보태왔다.
과거 신정동 인근에서 강도강간 범행을 저질러 수감 됐던 E 씨와 F 씨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이 출소한 F 씨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의 집 바닥엔 끈이 잔뜩 널려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경찰청 미제팀은 재수사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세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결정적 제보와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더 이상의 진전 없이 미궁에 빠져있는 상태다.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은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여전히 범인은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