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명이 숨진 대구 지하철, 그후 22년…5호선 방화 사건

이혼 소송 결과 불만 품은 60대
휘발유 들고 지하철 방화 시도

대구 참사와 닮은 범행 동기...
시민 대응, 안전 시스템이 막아

 

2003년 그날은 대구 계명대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1079호 열차가 송현역에 진입하자 졸업식에 가려는 가족 단위의 승객 여럿이 꽃다발 한아름을 안고 열차에 탑승했다. 같은 시각, 김대한(당시 56세)도 열차에 올랐다. 그의 가방엔 4L 상당의 휘발유가 들어 있었다.

 

송현역을 출발해 20여 분을 달린 1079호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

그때였다. 김대한이 가방에 든 휘발유 통에 불을 붙여 전동차 바닥으로 던졌다. 불길은 무섭게 번져갔다. 

 

당시 전동차 내부는 우레탄폼, 폴리우레탄 등의 가연성 소재로 되어 있어 열차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기까지 불과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발생한 화재에 중앙로역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초기 소화에 실패한 역무원들이 1079호 전동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대피시켰지만, 중앙로역은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에 빠르게 잠식됐고 잠시 뒤 방화 셔터가 작동하며 지상으로 올라가는 대피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최악의 상황은 더 있었다.

중앙사령부가 중앙로역을 통제하지 않아 1080호 열차가 반대편 선로로 진입한 것이다. 1079호의 불길은 곧 1080호 열차로 옮겨붙었다.

 

1080호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대부분은 전동차 내부로 밀려 들어오는 검은 연기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사망 192명.

대부분의 사망자는 1080호 열차에서 발생했다. 가족 단위의 사망자도 많았다. 계명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방화 사건이자 인명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뇌졸중으로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던 김대한은 자신의 처치를 비관해 자살을 결심하고, 혼자 죽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방화를 저질렀다.  우리 사회의 안일한 안전 대응 시스템은 테러범의 불순한 행동을 최악의 참사로 키웠다.

 

정작 범인인 김대한은 참사에서는 살아남았다. 법원은 그에게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을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주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된 김대한은 이듬해인 2004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2025년 5월 31일 토요일 오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가 한강 지하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60대 남성 원 모 씨는 미리 준비한 페트병을 꺼내 의문의 액체를 객실 바닥에 뿌렸다. 휘발유였다. 옷가지에 불을 붙인 그는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불덩이를 던졌다. 불과 2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22년 전 김대한의 범행 수법과 매우 유사하지만, 이번엔 결과가 달랐다.

 

00여 명에 달하는 승객 중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전동차의 바닥재와 객실 의자 등이 모두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불길이 크게 번지지 않았고, 기관사의 신속한 대처와 침착하고 성숙했던 시민들의 대응이 주요했다.

 

모두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으로 얻은 것들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부터 전동차의 골격과 내부를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교체하는 한편, 위급 상황 시 신속 대응을 위한 비상통화장치도 촘촘하게 설치했다. 사회적 참사 예방을 위한 재난안전법도 대구 참사를 계기로 제정되었다.

 

원 모 씨의 범행 이유는 불만족스러운 이혼 소송 결과였다. 현존전차방화치상 등의 혐의를 받던 원 씨는 살인미수 혐의가 추가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원 씨가 테러에 준하는 살상행위를 했다는 점을 들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구의 교훈이 아니었다면 또다시 테러범의 반사회적 범행에 우리의 소중한 가족을, 이웃을 잃을 뻔했다. 192명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사건 발생 후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아픈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