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2022년 8월, 헤어진 여자친구의 차량을 6.7km 따라가며 5시간 30분 동안 미행했고, 사진 촬영까지 했다. 이 사실을 식당 종업원에게 전해 들은 피해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일회성 스토킹”이라며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같은 해 11월 이를 확정했다.
법원은 당시 A씨가 신고 직후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스토킹의 시간적 길이만으로 ‘지속적 행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피해자의 불안 정도도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은 스토킹 범죄의 ‘지속성과 반복성’이라는 요건 해석이 판사마다 다르다는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최근 스토킹에 이은 강력범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사법 판단의 일관성 부족이 피해자 보호에 공백을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유사 사례에서도 판단은 엇갈렸다. 2023년 4월, B씨는 남편의 내연녀 차량을 7분간 따라가며 경적을 울렸다가 스토킹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가 확정됐다. 과거 유사 전력까지 있었지만, 법원은 “피해자를 계속 따라다닐 의도가 없었다”며 스토킹이 아니라고 봤다.
반면, 2021년 12월 C씨는 이웃이 기초생활수급비를 훔쳐갔다고 의심해 현관 앞에 돌멩이를 쌓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행동을 14분간 반복했다. 1심은 무죄였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단기간이라도 반복된 공포심 유발 행위”라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 법, 다른 판단.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을 ‘지속·반복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사건의 구체적 정황과 피해자 반응보다,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고무줄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피해자가 실제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중심으로 판단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부가 스토킹을 단순한 갈등이 아닌 중대한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성’과 ‘반복성’ 요건을 엄격히 요구하는 기존 법체계가 ‘예방’보다는 ‘사후 대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해자가 분명한 공포를 호소해도 반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스토킹을 저지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스토킹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지속성’ 중심의 사법 판단이 피해자를 위험에 방치하고 있다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