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세 남매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하며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헤어지셨고, 도망치듯 떠난 어머니를 뒤로한 채 아버지의 손에 맡겨졌었는데, 아버지 역시 우리를 데리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게서 도망치는 듯했다.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사도 정말 자주 다니고, 이사를 거듭할수록 집의 크기도 점점 작아졌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일한 방이자 거실에서 함께 자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시다가 갈수록 오랫동안 집을 비우셨다. 사흘, 나흘…. 일주일…. 그렇게 우리는 우리끼리 지내게 되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오면 동생을 태워 보냈고 누나와 나는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도 누나와 함께 집으로 걸어왔는데, 오는 길에는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두고 간 돈으로 디지몬 빵을 사 먹었다. 500원, 학교 급식과 500원짜리 디지몬 빵이 우리의 하루 양식이었다.
디지몬 빵은 매일 먹다시피 했지만 질리지 않았다. 항상 두 개를 먹고 싶은데 사 먹을 돈이 부족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오늘 두 개를 먹으면 내일은 못 먹으니까. 그때는 그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오셨다. 우리가 자고 있으면 문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아버지는 대충 널브러져 주무시다가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가셨다. 우리는 또 같은 옷을 입은 채 집을 나섰다. 봉고차에 동생을 태워 보내고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면 누나와 집으로 걸어온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이 똑같은 일상을 내가 기억할 수 있게 된 건 그날 때문이었다. 학교를 마쳤는데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나름 오래 기다렸지만 그래도 누나가 보이지 않자 나는 결국 집으로 갔다. 해가 졌고 날은 어둑어둑 컴컴해졌다. 누나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나는 엉엉 울었다. 동생도 따라서 엉엉 울었다. 누나도 도망친 걸까?
‘쾅쾅쾅!’ 한바탕 눈물바다를 헤엄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나인가 싶어 잽싸게 문을 열었는데 처음 보는 아줌마가 냄비를 들고 서 계셨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들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큰 냄비. ‘이게 뭐지?’ 아줌마가 말했다.
“너희 밥 안 먹었지?”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줌마는 연신 ‘아이고….’를 내뱉으셨다. 이 와중에도 동생은 숨을 헐떡이며 울고 있었다. 누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는 두리번거리며 집에 들어오셨다. “누나는 어디 갔어?”부터 시작된 참견.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정체불명의 그걸 끓여 주기까지.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가 좋았다.
“이거 미역국이야, 너희 누나 오늘 생일이라며? 어디 놀러 간 거 아니야?” 아차 싶었다. 때마침 보글보글 끓은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좁은 집 안에 가득 찼다.
“아줌마는 맨 위층 사는데, 너희 아빠한테 연락받고 온 거야. 가스레인지 위험하니까 아줌마가 미역국 다 먹을 때까지는 이렇게 와서 밥이랑 해줄게, 먹자.” 그러고는 냉장고와 벽 사이 틈에서 조그만 협탁을 꺼내 폈다. 든든함과 따스함에 그친 울음의 흔적도 지워 갈 때쯤 누나가 돌아왔다.
양손에 선물 꾸러미를 가득 든 채로. 불안함과 두려움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또 엉엉 울었다. 아줌마는 이때 분명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으리라.
이후에도 냄비 안 미역국이 식어 있을 때면 아줌마는 따뜻하게, 뜨겁게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그러나 이내 미역국은 사라졌고, 커다란 냄비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사를 해야 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다시피 한 누나가 어떻게 양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올 수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왜 하필이면 이때의 기억이 유독 선명한 걸까? 그때 느낀 그 따스함을 잊으면 안 된다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보내는 어떤 신호가 아닐까?
그때의 따스함을 잊고 살았던 내가 지금에서야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나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는 따스함을 주는 그런 존재로 다시 태어나리라 다짐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라고 그 아줌마가 내게 어디선가 미역국을 보내셨나 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미역국’들이 묻혀 있겠지. 그것들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