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내란 전담재판부 예규 선제 도입에도…與 입법 ‘고수’

무작위 배당 유지한 채 집중심리 방안 제시
민주 “법안은 예정대로”…예규 실효성 논란

 

대법원이 최근 내란·외환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 설치 예규를 스스로 마련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예규와 무관하게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대법원 조치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사법부와 지귀연 재판부는 12·3 내란·외환 사건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지금까지 내란 청산에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시늉만 하는 조희대 사법부의 행태는 국민 기만”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전날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가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해당 예규는 형법상 내란죄·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가운데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재판부를 두는 것이 골자다.  예규는 행정예고 기간을 거쳐 시행되며, 시행 이후 기소되거나 항소가 제기된 사건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항소심이 첫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예규는 민주당이 이달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처리를 예고하며 입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 3월 지귀연 재판부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5월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사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을 부각하며 사법개혁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여기에 내란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내란 사건만을 담당하는 특별 재판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다만 민주당 안은 재판부 구성 방식에서 위헌 논란을 낳았다. 당초 법안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법무부 장관, 판사회의가 각각 추천한 인사로 전담재판부 판사를 선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후 외부 추천 논란을 의식해 내부 추천으로 수정됐지만, 대법원장이 사실상 판사를 지명하는 구조라는 비판은 남아 있다.

 

이에 비해 대법원이 내놓은 예규는 기존 사건 배당의 무작위 원칙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무작위로 배당된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한 뒤 기존 사건을 재배당하고, 새로운 사건은 배당하지 않도록 해 집중 심리를 가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특정 사건을 위해 별도의 재판부를 새로 설치하는 민주당 안과 달리, 사법행정의 틀 안에서 전담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사법부 독립과 재판 공정성 원칙을 지키면서도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는 국민과 국회의 목소리를 일정 부분 수용한 절충안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여권의 강한 압박 속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법원행정처는 “국가적 중요사건 재판의 신속하고 공정한 진행에 대한 국민과 국회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 절차 지연 없이도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유지한 채 집중 심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규 제정 배경에는 사법부 내부의 문제 제기도 작용했다.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등에서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의 위헌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사법부 스스로 신속한 재판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공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 선고가 하나도 없는 것은 문제”라며, 법원이 신속한 판결로 입법 논란의 계기를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법안을 예정대로 통과시킬 경우 대법원 예규는 법률에 밀려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법체계상 법률이 예규에 우선하는 만큼, 입법이 이뤄지면 예규는 그 취지에 맞게 손질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을 계획대로 23일 임시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24일 처리한다는 방침인 만큼 이번 예규의 실효성은 낮은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1당인 민주당의 법안 추진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사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최근 언론에 “국민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사법부가 더 일찍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했어야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