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살해후 '3년6개월'간 시신 유기…재판서 드러난 범행 전모

 

동거녀를 살해한 뒤 3년 6개월 동안 시신을 은닉해 중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의 잔혹한 범행이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인천지법 형사15부(손승범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30대)에게 징역 27년을 선고하고, 출소 후 15년간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A씨는 2021년 1월 인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던 피해자 B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직후 시신을 방 안에 그대로 둔 채 은닉했고, 약 3년 6개월 동안 해당 오피스텔을 유지하며 범행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2015년 일본의 한 호스트바에서 처음 만났다.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던 B씨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 A씨는 2016년부터 약 1년간 인천의 원룸에서 함께 생활하며 사실혼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7년 A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적발돼 강제추방되면서 관계는 급격히 틀어졌다. 이후에도 A씨는 집요하게 연락을 이어가며 피해자의 일상과 인간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했고 주변 지인들의 동선까지 파악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B씨는 연락을 끊으려 했지만 갈등은 지속됐다.

 

2018년 초,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B씨는 A씨에게 여권을 빼앗긴 채 다시 동거하게 됐다. 해외 이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던 B씨는 휴대전화 개통이나 금융거래조차 자유롭지 못했고, A씨는 현금으로 생활비를 지급하며 피해자의 생활 전반을 통제했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연락도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연락이 끊긴 점을 이상하게 여긴 피해자의 언니는 실종 신고를 했고, 한 차례 통화가 연결되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연락이 두절됐다. 같은 해 6월 길거리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지만,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범행은 A씨가 사기 사건으로 실형 선고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 발생했다. 선고 이틀 전 새벽, 술을 마시던 중 ‘옥바라지’ 문제와 생계, 일본에 있는 아들을 만나야 한다는 문제 등이 겹치며 말다툼이 벌어졌고, A씨는 구속될 경우 피해자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결국 A씨는 침대 위에 있던 피해자를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현장을 떠났지만 임대차 계약은 유지했다. 매달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며 방을 드나들었고, 시신 상태를 확인하며 락스와 물을 뿌리고 방향제와 향을 사용해 냄새를 차단했다. 구더기가 생기면 살충제를 뿌렸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가동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시신 은닉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행위는 약 3년 6개월간 이어졌다. 이후 A씨가 사기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월세와 공과금 납부가 중단됐고, 지난해 7월 관리인이 방을 확인하던 중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은 세상에 드러났다.

 

A씨는 재판에서 “피해자가 살인을 부탁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친 지배·통제 관계와 범행 이후의 행태를 종합할 때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살해되는 순간 느꼈을 공포와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고, 유족들 역시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반성문에서 ‘검찰 구형이 과하다’, ‘합의금이 비싸다’는 취지의 주장만 반복했을 뿐 진정한 참회나 용서를 구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시신과 함께 TV를 보고 셀카를 찍었다는 진술 등에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다”며 “범행은 참혹하고 악랄해 사실상 사체를 모욕·손괴한 것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관리인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끝내 가족에게조차 존재를 알리지 못한 채 홀로 남겨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