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무과와 보안행정 업무를 오래 하던 내가 미지정 사동 담당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드센 수용자들, 고질적으로 직원을 괴롭히는 수용자들, 상습적으로 규율을 어기는 수용자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수용자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CRPT(기동순찰팀)에 근무하는 후배는 “형님, 여차하면 전화하세요. 바로 달려갈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개월 동안 CRPT를 거의 부르지 않았다.
내가 미지정 사동을 비교적 무난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용자 거실 지정을 직접 맡았기 때문이다. 거실 지정 담당을 했던 경험을 살려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수용자들을 미리 가려내고 배치 단계에서부터 사고를 줄이려 했다.
실제로 사고를 많이 치고 싸움이 잦은 수용자라도 유독 마음이 맞는 상대가 있었다. 그렇다고 수용자들이 원하는 대로만 배치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감이 아니라 자료와 기록이었다.
과거 거실 지정 업무를 할 때 공장 담당이 특정 수용자의 전방을 강하게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내가 거절하자 당장 싸움이 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직접 공장으로 가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몇 달 전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방에 넣게 되는 상황이어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설명을 들은 뒤 그는 상황을 이해했고 오히려 전방을 요청했던 수용자들을 불러 혼을 냈다. 자료 분석 없는 거실 지정은 낭패를 보기 쉽다. 기록을 미리 확인해 두면 상당수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거실 배치를 마친 뒤 수용자들에게 늘 같은 말을 했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싸움이 날 것 같으면 일이 터진 뒤가 아니라 그 전에 먼저 말하라는 것이었다. 작은 갈등을 방치하면 폭행으로 번지고 폭행은 다시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 현장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 “수용자를 잡는 것은 수용자다.” 거실 안에서 다른 수용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에게는 더 강한 성향의 수용자를 넣어주면 기세가 꺾이곤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어디까지나 제한적이다. 특히 과밀수용 앞에서는 사실상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교정사고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과밀수용이다. 예를 들어 5명이 생활하도록 설계된 거실에 7명, 8명이 들어가면 잠잘 때 조금만 뒤척여도 옆 사람 몸에 닿는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 잠꼬대를 하는 사람, 잠에서 자주 깨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 한 방에 섞이면 불편과 스트레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소한 말다툼도 쉽게 감정싸움이 되고 결국 실제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수용자는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차라리 한 사람과 있는 것이 낫다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수용자와 둘이 생활하겠다고 자원하기도 했다.
문제는 독거실을 원하는 수용자는 많지만 독거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혼거실 배정을 거부해 조사실에 수용되고 징벌을 받은 뒤 징벌이 끝나자마자 다시 입실을 거부하는 수용자도 있다. 이는 단순한 고집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교정시설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 번은 징벌을 마치고 미지정 사동으로 오는 수용자 K가 있었다. 그는 독거실을 요구하며 입실을 거부해 여러 차례 징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독거실이 없어 혼거실에 배치될 예정이었고 입실을 거부하면 바로 CRPT에 연락해 달라는 말까지 미리 들었다.
그날 오후 K는 사동에 오자마자 독거실을 달라고 했다. 독거실은 없으니 혼거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입실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담당실로 데려와 일단 앉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말투는 다소 삐딱했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인지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때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말도 나왔다. 나는 그렇게 좋은 일을 하던 분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고 그는 인생이 꼬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나도 한때 천주교 성직자가 되려고 했는데 인생이 꼬여 여기까지 왔다고 하자 둘 다 웃었다.
출소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나와 같이 있다 나가자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결국 그는 혼거실에 들어갔고 출소할 때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하다 나갔다.
물론 모든 수용자가 대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수용자라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능적으로 직원을 괴롭히는 수용자들 가운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이 어긋나기 시작한 분기점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지점을 이해한다고 해서 규율이 느슨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지점에서 사회가 함께 봐야 할 문제가 있다. 교정시설 안의 갈등과 사고를 단지 수용자 개인의 문제나 현장 직원의 역량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과밀수용과 독거실 부족, 정신질환이나 심리 불안정 수용자에 대한 대응 한계, 반복되는 입실 거부와 징벌의 악순환은 모두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다. 현장에서 아무리 경험 많은 직원이 버티고 있어도 수용 환경이 한계에 이르면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교정시설은 사회와 단절된 외딴 공간이 아니다. 그 안의 수용자들은 결국 다시 사회로 돌아올 사람들이고, 그곳의 질서와 운영 수준은 사회 안전과도 연결된다. 교정시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시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용자 간 폭력, 재범 위험, 교정공무원의 소진과 인력 이탈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사회 전체의 비용이 된다.
그래서 교정행정의 현실은 더 이상 교정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도 과밀수용 문제와 교정시설 운영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정은 처벌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마지막 공적 공간이다. 그 공간이 무너지면 결국 사회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미지정 사동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하다. 사고를 막는 힘은 때로 엄한 통제보다 정확한 자료와 적절한 배치, 그리고 끝까지 들어주는 한마디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가능하려면 현장이 최소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구조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