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던 현직 판사가 징계 없이 퇴직하면서 법관 징계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사직이 수리된 데다 최근 징계 사례도 사실상 중단되면서 제도 전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말 인천지방법원 오모 전 부장판사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오 전 판사는 제주지방법원 재직 당시 근무 기강과 재판 절차를 둘러싸고 잇따라 논란에 휩싸였다. 2024년 3월 27일에는 합의부 재판에서 다른 판사들과 합의하지 않은 채 판결을 선고했다는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같은 해 6월 28일에는 동료 판사 2명과 근무시간 중 술을 마신 뒤 노래방에서 업주와 시비를 벌이며 소란을 일으켰고, 이 일로 지난해 9월 법원장으로부터 징계 대신 경고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정기 인사에서 오 전 판사를 제주지법에서 인천지법으로 전보했다. 오 전 판사는 전보 직후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직 배경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인사에 대한 불만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위 의혹에도 별도의 징계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법원 감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당 사안을 징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대법원 입장이다.
수사가 진행 중인 법관의 사직이 수리되면서 징계 없이 책임을 면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개별 사안에 그치지 않고, 법관 징계 제도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가 국민의힘 소속 송석준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법관 징계 처분별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이뤄진 징계는 견책 1건, 감봉 4건, 정직 4건 등 총 9건에 그쳤다. 특히 2024년과 지난해에는 징계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다른 법조 직역과 비교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정직 이상의 검사 중징계는 2023년 1건에서 2024년 13건으로 늘어나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징계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비위 의혹이 제기된 법관이 별다른 제약 없이 재판을 계속하는 구조도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음주운전이나 향응 수수 의혹을 받는 판사들이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재판 업무를 이어간 사례도 확인된다.
이 같은 구조는 헌법 규정과도 맞물려 있다. 헌법 제106조는 법관에 대해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선고 또는 징계처분이 아닌 경우 불리한 처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징계 절차가 종료되기 전에는 재판 업무를 제한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법원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농단 사태 이후 감찰 기능이 약화된 점도 원인으로 지목한다. 과거 법원행정처 산하에 있던 윤리감사관실이 대법원장 직속 외부 기구로 분리되면서 내부 통제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일선 판사의 비위를 사전에 포착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능도 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관 비위 사례가 잇따르자 대법원도 제도 보완에 착수했다. 올해 2월 ‘법관 윤리 제고를 위한 대법원 윤리감사관의 권한에 관한 연구’ 용역을 공고하고, 내부 감사기구의 강제 조사 수단과 감사 방식 개선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비위 혐의가 상당한 법관에 대해 중간 단계의 조치를 도입할 수 있는지, 윤리감사관과 사법행정권자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지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사법농단 사태 이후 법관 동향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감찰 기능이 위축됐다”며 “징계가 실질적인 제재로 작동하도록 제도 전반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