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필자가 가장 전율했던 판결이다. 억울하다고 주장했던 피고인의 말이 사실이었고, 자료와 논리로 치열하게 다투며 결국 진실을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항소가 그런 결말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항소심은 단순히 1심 재판을 다시 반복하는 절차가 아니다. 오히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판결이 왜 잘못됐는가”에 대한 구체적 근거와 새로운 자료를 요구한다. ‘다름’이 없다면, 재판부는 대부분 기계적으로 “항소는 이유 없다”며 기각해 버린다. 감형을 바란다면, 원심에서 제출하지 못한 새로운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처벌불원서, 피해자와의 합의서, 진심이 담긴 반성문, 가족이나 지인의 탄원서 등 양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요소든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1심에서 전략 없이 억울함만을 호소하거나, 단순 부인만 반복했던 경우라면 그 전략부터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1심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은 사정이 있었다면, 변호인과 그 사유를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정리하고 새롭게 합의 시도를 하거나 재판부가 참작할 만한 설명을 준비해야 한다. 항소심은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자료로 말해야 하는 절차다.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면
강간죄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나면, 대부분의 피고인은 항소를 고민한다. 그러나 단순히 억울하다는 감정만으로 항소심이 판결을 뒤집는 일은 거의 없다. 항소심은 피고인의 감정이 아닌, 원심 판결이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요구한다. 자필 반성문은 출발점일 뿐이다. 성인지교육수강 여부, 심리상담 참여 기록, 생활 일과표, 자발적으로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사과문 등이 항소심에서 주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 이런 자료들은 단순히 반성하고 있다는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피고인의 태도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모범적인 수형 생활은 피고인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질적 지표이니 이러한 내역 역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항소심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1심 판결문의 논리 구조다. 피고인이 왜 유죄를 선고받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 예컨대, 법원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근거로 판단한 경우, 항소심에서는 그 진술의 모순이나 일관성 부족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사실이 아니라거나 억울하다는 주장은 항소이유가 될 수 없다. 법원은 주관이 아닌 구조화된 설득을 원하기 때문이다. 즉, 기록이 없으
“합의하에 했다고 생각했는데… 강간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술자리에서의 만남이 인생이 뒤집히는 순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 특히 많이 의뢰되는 유형이 있는데 바로, 술에 취해 처음 만난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후 며칠 뒤 강간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경우다. 의뢰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였습니다. 서로 좋아서 한 거예요.”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주장을 간단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많은 의뢰인들이 오해를 하고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수사가 되죠?”이다. 이와 같은 의뢰인들의 질문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강간 혐의는 ‘증거’가 없어도 수사가 시작된다. 강간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수사가 시작될 수 있고, 기소 및 유죄판결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범죄다. ‘진술 대 진술의 싸움’인 것이다. 수사기관에 기재된 진술 한 줄로 인생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강간 사건이다. 상대가 술에 취했을 때는 특히 위험하다. 형법상 강간은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를 말한다. 문제는, 술에 취한 상태의 동의는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이렇게 진술할 수 있다. “저는 기억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법정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변호사이지만 변호사인 나에게도 법정 분위기는 언제나 숨막히게 다가온다. 특히 형사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날씨였다. 실내외 온도차이로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연락을 받았다. 고향 친구와 친한 분이 아동 강제추행으로 수사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관을 포함해 누구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라는 말에 감기 기운도 잊고 바로 사안 파악을 시작했다. 사건은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 조사가 이미 끝난 상황이라 나는 재판부터 조력을 시작했고, 첫 번째 기일에 일을 저질렀다. “존경하는 판사님,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자 합니다.” 피해 아동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나는 피해자에게 증인 심문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공개 국민참여재판으로 재판은 진행되었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법정에서의 다툼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때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꽤 어려운 과정이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자료를 검토한 후였지만, 놓친 부분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어 종이가 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