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너의 얼굴을 문득 그려 본다. 미소 짓는 너의 얼굴이 흩날리는 눈꽃 사이로 너는 날 보며 웃는 듯하다. 눈꽃 같은 나의 사랑아, 나와 사랑을 하는 너의 모습이 새하얀 눈꽃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비친다. 내 사랑아, 눈이 오는 날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냐”고 새하얀 눈꽃을 보며 적는다. 너에게 사랑한다고, 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흩날리는 눈에 띄워 너에게 전한다. 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2027년 9월 19일 결혼을 약속한 아내 최나래에 게 남편 상식 드림 ○○○교
존경하는 장관님, 청장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26년째 수용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무기수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은 죄의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 오직 한 가지 희망—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 루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도 못한 상태로 수 감되었지만, 이후 검정고시 합격, 방송통신대 재학, 수십 개의 상장과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에 전념해 왔습니 다. 더불어 법무부 소속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도 출전 해 입상한 바 있습니다. 그간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7년 전부터 최상위 등급인 S1·R1 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단 한 번의 징 계 없이 규율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중 관리대상자’라는 분류 하나만으로 모든 처우 심사에서 자동 제외되고 있다는 현실 앞에 절망을 느낍니다. 자율사동, 중간처우의 집, 희망센터, 자립금 지급, 확대 전화처우, 가족 접견 기회 등은 모두 재범 방지와 사회 복 귀를 위한 제도입니다. 그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죄명만이 아닌 수형생활의 실제 행적을 기준으로 일정 기준 이상 을 충족한 엄중관리대상자에 한해서는 최소한 심사의 기 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환한 대낮,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빛나는 컴 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왜 나는 매번 떨어지는 걸까? 이대로 취업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걸까?” 온갖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바닥 한가운데 누워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벌컥— 엄마는 늘 그렇듯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 왜 또!”라며 이불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만 아팠다. 어둠을 뚫고 방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엄마는 이 불을 확 걷었다. “일 나라!” 방문 너머 비치는 거실 전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실로 나가자 검은 비닐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내고, 싱크대에 물을 받 아 상추와 깻잎을 담그며 말했다. “삼겹살 3만 원어치 사 왔다! 먹자!”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나는 잔뜩 신난 듯한 엄마가 아니꼽게 보였다. 명치가 아플 정도로 속에 꽉 찬 이 답답함을 불효막심하 게도 엄마에게 풀 심산이었다. 그때,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허공에 뒷발차기를 하는 게 아닌가… 육중한 몸매의 엄마가 짧은 다리를 뒤로 뻗어 두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시 대선 무대에 올랐다. 10일 공개한 출마 선언 영상에서 그는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3년 전 제20대 대선 출마 때와 마찬가지로 영상 형식을 택했지만, 메시지와 전략은 현저히 달라졌다. 제20대 대선 출마 선언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사회 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21대 출마 선언은 '잘사니즘'과 'K-이니셔티브'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확장된 서사를 제시했다. 경제 회복이라는 익숙한 메시지 위에 '국민과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실용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화두를 덧입힌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이번 출마 선언에서 '잘사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잘사니즘에 대해 "조금 더 가치지향적이고 조금 더 정신적이고 고통 없는 삶을 넘어서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가 지난해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며 내건 '먹사니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슬로건이다. 지난 20대 대선 출마 당시 '억강부약'(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움)이라는 정치 철학을 강조한 점과 확연히 다르다. 당시 이 전 대표는
4. 1. 만우절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니 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사망 소식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전날 밤 11시 반경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10년 전 부친이 이사장이던 부산 모 대학 부총장 시절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장제원 의원은 내가 일면식도 없고 특별히 호감을 가졌던 정치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만우절 오전 내내 유쾌하지 않은 거짓말에 속기라도 한 것처럼 우울해졌다. 피해자도 걱정된다. 성폭력으로 인해 10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이제 어렵게 용기를 내서 법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 장 의원의 자살로 더 큰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을 지도 모른다. 부디 불필요한 죄책감과 못난 사람들의 입길에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법복을 벗고 작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변호사의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변호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내가 장 의원의 변호인이었다면 어떤 조력을 했어야 했을까. 변호사인 내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억울하다고 말할수록 힘이 난다. 일을 하면서 의뢰인이 진짜 억울하다는 것을 확
Q. 저는 현재 전세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 전에는 벌금형도 없는 초범입니다. 공소 금액은 50억이며 일반 사기로 기소되었습니다. 만약 합의서와 처벌 불원서를 다 받았을 경우 선고형과(피해 변제는 다 못 하고) 전세대출 사기건 1건 1억 7천만 원까지 다 변제했을 경우 선고형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현재 항소심인 사건번호 2024노0000 서울남부지방법원 항소3 제3-1형사부 재판부에 대해 정보도 알고 싶습니다. A. 질문자님의 질문 중, 공소금액은 50억 원인데 1억 7천만 원이 어떤 것인지 정보가 부족하여, 최근 전세사기 관련 재판부의 판결 선고 경향을 분석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합의가 없는 경우 광주지법 순천지원 2025년 3월 000 사건에서 피고인은 무자본 갭투자, 피해자 다수, 합의 없음, 피해액 수십억 원에 이르러 징역 9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2025년 000 사건에서는 피해자 12명, 피해액 약 10억 원, 합의 없음의 상황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비교적 형이 낮은 이유는 공범들과의 일부 책임 분산 구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대부분 하범이 아닌 경우 실형을 받았으며, 피해금액이
[독자 편지] Q. 안녕하세요. 마약사범 가석방 현황 자료를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얼마 전 기사에는 2023년도 현황만 포함되어 있어,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도별 마약사범 가석방 현황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확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공 부탁드립니다. ○○○교 [새출발 상담소] A. 현재까지 확인된 마약사범 가석방 인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9년: 1명2020년: 1명2021년: 11명2022년: 28명2023년: 31명 법무부는 ‘처벌에서 회복으로’라는 치료 중심 정책 기조에 따라 마약사범 가석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2024년도 현황은 확인되는 대로 별도로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현재까지의 추이를 보면, 2024년, 2025년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행 치료조건부 가석방 제도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① 2범 이하의 단순 투약 마약사범이 대상. 출소 후 2개월 이상 재활 치료를 이행하는 조건② 유통·제조 등 중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대상에서 제외 이와 관련해, 유통·제조자도 “회복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게 더 폭넓은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개선 요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 재
누구나 어려웠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시절, 우리 집도 풍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 다. 한 지방 대학에 합격한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고, 아빠는 일을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이것저것 가 리지 않고 일을 다녔다. 엄마가 보내주는 용돈은 아무리 아껴 써도 금방 바닥났 다. 학교생활은 과 대표를 맡을 만큼 적극적이고 재밌게 했다. 하지만 지방대에 다닌다는 열등감이 나를 붙잡았다. ‘더 열심히 공부할걸’ 미련 속에서 1학기를 마치고 집에 올라 왔다. 6월의 초여름, 느즈막한 시간에 한 친구가 날 찾아왔다. 나와 같이 미술학원을 다닌 친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 그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입시 다시 해보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입시를 또 하라고? 그것도 반수를? 난 자신 없어.” 그렇게 돌아섰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아빠도 일을 마 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엄마, 아빠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 어놓았다. “너는 너밖에 모르니?” “아직도 미술학원비가 80만 원
20여 년 전,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 하철에서 어떤 여자 둘이 말을 건네왔다. 모르는 사람들 이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어찌어찌 이야기 가 오갔다. 내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던 한 여인이 물었다. “요즘 집에 안 좋은 일 있죠? 그거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 요.” 건강했던 동생이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데다 엄마, 아 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풍전등화일 때였다. 솔깃해 진 나는 겁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날이 컴컴해진 지 오 래여서 중간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밑져야 본전 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선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희미하게 켜진 촛불 몇 개, 책상에 펼쳐진 한자 가 득한 책, 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조상님들 얘 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잘못된 곳에 왔다는 걸 대변했다. 그제야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제사상이 차려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여하튼 조상님을 위한 것이며, 나는 가진 돈 전부를 내놓 은 뒤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