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고 선택한 건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28년 전, 대학을 다닐 때 우연히 한 사람을 알고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시선에 머물고 싶어 마음에 아릴 듯한 첫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자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 선택이 10년, 20년이 되어도 다른 사람을 내 곁에 담기가 주저됐습니다. 어쩌면 그녀를 향한 배신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9살, 그녀가 드디어 내 마음속을 허물며 다가왔고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 그녀의 선택이 후회로 남지 않게끔 행복을 선사하며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옳고 그름의 선택에 단 한 번의 실수로, 이기적인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지금 이곳에서 하루하루 자책과 반성으로 후회의 나날을 보낸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어느덧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그동안 매번 접견을 오면 나의 얼굴을 보며 눈물과 웃음을 띄워 보내던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과 표정을 짓는 게 전부인 저입니다. 이제 곧 가석방으로 출소해 나가면 제 선택의 길에 당신이 때론 안내자이며 길동무가 되어 평생을 함께 걸어가려 합니다. 어느 때는 엄마 같고 어느 땐 누나 같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당신께
내가 지나온 지난 삶의 길목에 인연의 씨앗을 뿌려두었습니다. 그 씨앗이 발아되어 새싹이 돋든, 아니든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지나온 길목에서 새싹들이 돋아나 결국에 꽃을 피웠다면, 아마도 그 꽃은 내 마음속에 묻어둔 그 사람일 것입니다. 나와 맺은 인연의 씨앗이 결국엔 발아되어 꽃을 피웠다는 것은, 우리가 인연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그렇게 꽃을 피웠나 봅니다.
오늘 새하얀 첫눈이 내린다. 우리도 예고 없이 내린 이 눈처럼 만났지. 수없이 내리는 이 눈처럼 나도 너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떠나게 되어 마음이 시리다. 일기예보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눈 소식처럼 나도 일상 속에서 너의 소식을 듣게 되겠지. 듣게 되는 그 소식들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폭설보단 오늘 내리는 새하얀 눈처럼 행복한 소식이길 바란다. 눈들이 쌓이다 점점 녹아 없어지듯이 나도 너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겠지. 매년 내리는 이 눈처럼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였기를….
창가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두 발로 걷고 싶지만 걸을 수가 없다. 네모난 창살에 나의 몸과 영혼이 갇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린다. 붉게 노을진 한강변을 걷던 순간 여자 친구와 두 손을 잡고 데이트하던 순간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던 순간 당연하고 일상적이던 그 순간들이 삶에서 가장 빛나던 소중한 것임을 깨닫네. 아아 그립고 그리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늘밤 꿈속에서 나는 걷고 있다
오색찬란하게 피었던 꽃이 지며 봄이 가고, 녹음 푸르던 여름도 가고, 단풍나무 붉게 염색시키며 짧게 찾아왔었던 가을에서 온 세상 하얗게 물들여 가며 겨울이 찾아왔구나. 내 아들이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모습을 나도 곁에서 지켜보며 사랑과 응원을 듬뿍 주고 싶지만… 아빠가 많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고, 너에게 진심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은 누구보다 강하고 씩씩하니 잘 이겨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빠는 이 곳에서 아들 생각만 하며 지내고 있어. 얼마 전 ‘You Raise Me Up(유 레이즈 미 업)’이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간단히 가사를 설명해 주자면 ‘당신이 일으켜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강해지며,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라는 내용인데, 생각해보니 아빠를 일으켜세워주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아들이었단다. 네가 아빠에게 찾아와 준 덕에 아빠가 우뚝 설 수 있었고, 네가 있었기에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단다. 눈을 뜨고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축복이고 기적이야. 아빠는 우리 아들이 부끄럽지 않게, 아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코흘리개 시절 초등학교 다닐 적에 내 아버지의 모습은 밤이 되어서야 뵐 수 있었습니다. 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 길로 학교에 등교하다가 동네 바닷가 방파제에서 그물 손질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5남매의 자식에게 배곯지 않게 하시려 당신은 배고픔도 잊은 채 거북등보다 더 거친 손으로 열심히 일만 하셨습니다. 행여 자식새끼들이 용돈이 없어 알사탕 하나 사 먹지 못할까 봐 힘들게 버신 귀한 돈을 손수건 속에 꼭 싸매어 둔 것을 저희 형제들에게 50원, 100원씩 손에 쥐여 주시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하시며 항상 웃으셨습니다. 정작 당신은 구멍 난 양말, 구멍 난 장갑 살 돈도 아껴 쓰시며 밤늦게 집에 오셔 어머니께 바느질로 꿰매게 하신 후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기였고 우리 가정도 가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때론 일을 마치고 귀가하신 아버지의 몸에서 땀 냄새가 날 때마다 왜 그리도 싫어서 투정을 부렸는지...지금 생각하니 아버지의 땀에 젖은 냄새는 가장의 무거운 흔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부모님은 힘든 내색 없이 “너희 5남매만 건강하
아빠에게 아빠, 잘 지내고 계세요? 엄마가 아빠 볼 수 있는 편지라고 쓰라고 해서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래도 엄마랑 저 잘 지내고 있어요. 방학이라 OO이도 집에 계속 같이 있는데 OO이가 어제 아빠 언제 오냐고 물어봤어요. 아빠 말대로 제가 오빠니까 잘 보살피고 있어요. 엄마가 판사님께 편지 쓰라고 해서 어제 보냈어요. 아빠 용서해달라고요. 판사님이 읽어보고 명절 때 아빠 왔으면 좋겠어요. 어제 엄마가 고기를 사줬는데 아빠 생각났어요. 할머니도 자주 오니까 걱정 마세요. 아빠가 빨리 교도소에서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아빠.
천안 기관사 아저씨 18살 3월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보육시설에서 가출을 하여 거리를 배회하다 천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수중에 가진 돈이 천 원인 상태에서 3일을 굶으며 천안역 안에서 노숙을 하며 지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것이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무작정 천안역 앞 신호등 건너편에 위치한 GS25 편의점에 들어가 가격이 될 것 같아 집은 ‘콕콕콕 스파게티’를 계산해 조리하고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의점에 들어온 천안 기관사 아저씨는 담배와 라면을 고르고 계산하려고 저를 보고 지나가려는데 제 모습이 불쌍한 건지 먼저 다가오셔서 저 먹고 싶은 거 마음 편히 고르라고 친절하게 절 대해주셔서 맨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진심으로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여서 라면 2개 소시지 1개 삼각김밥을 고르고 아저씨는 계산해 주셔서 먹고 있는 도중에 다 먹으면 이야기하자고 말씀해주셔서 편의점에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근처에 모텔에 같이 가서 하루 숙박 잡아줄 테니까 내일 시설에 다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을 하시니까 알겠다고 승낙했습니다. 그래서 모텔에 미성년자는 안 되는데 아저씨가 보증해주고 부탁해서 혼자서 모텔에
겨울 창가에 서서 (가족에게 온 편지) 철문 너머로 바람이 분다얼어붙은 골목 끝에너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기다림은 눈처럼 쌓인다.작은 숨결에도 흩날리며가슴속 깊이 차오른다. 너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침묵의 벽 너머시간은 얼음처럼 녹지 않는다.내가 부르는 소리는 닿을까?흰 눈처럼 흩어져바람 속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손끝이 시릴 때마다너의 체온을 떠올린다.함께했던 따뜻한 날들.손잡고 걸었던 평범한 거리들.그 기억이 내 옷깃을 여미고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겨울도 곧 지나겠지.눈송이가 녹아내리면이 얼어붙은 세상도조금은 부드러워지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너 없는 하루는 긴 겨울밤 같다.새벽은 오겠지만너 없는 창가에는햇살조차 춥다. 나는 이곳에서 기다린다.네가 돌아올 그 날을눈물 대신 손을 내밀어너를 다시 안을 날을. 내 사랑하는 아들 OO아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