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꽃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白合)의 골짜기를 지나, 푸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새들같이 봄이니까 마음 가는 대로 00이 생각하면서 펜 가는 대로 써 본다. ○○이 여행 좋아하잖아! 특히 부산. 가고 싶다고 했지! 오빠가 나가면 부산 가자. 바다 보러 가자. 우리 ○○이 노래 듣고 싶다.
강한 척했지만, 무척 힘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큰 힘을 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만 든다. 강릉에서 첫 친구가 되어준 T, 항상 웃게 해준 E, 같이 있으면 행복한 H, 바쁜 와중 편지 써준 D, 나를 응원하고 있을 H, 그 밖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를 감싸주고 살게 해준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대들이다. 돌아가 안길 곳이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고 있는 요즘이다. 밖에 있는 그대들도 서로에게 작게나마 용기가 되어주길 바란다. 다들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 2025년 봄비 내리는 날에 FROM. ○○
광역버스 창 너머로 ‘평화누리 자전거길’이라는 푯말과 함께 자유로운 영혼의 ‘자전거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도곡동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출퇴근하느라 지쳐가던 때였다. 지도로 검색해 보니 집에서 회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46킬로미터. 자전거로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이니 차 안에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요일을 정해 자전거로 퇴근했다. 월요일쯤 자가용에 자전거 두 대를 실어 회사에 두고 목요일과 금요일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는 식이었다. 자전거 타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다. 건강을 지키고 스트레스를 푸는 동시에 매일 소소한 여행을 떠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의 풀잎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고, 떠나는 구름 하나에 감동하며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인사를 나누는 방랑자가 될 수 있는 건 덤이다. 자전거 타기에 최고 좋은 계절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하지만 한여름 비 오는 날의 자전거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폭우 속에서 자전거를 타다 미끄러져 어깨뼈가 부러진 적도 있지만, 푹푹 찌는 더위에 땀을 흘리다 빗줄기 속에 몸을 맡기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자전거를 만나기 전 11년간 마라톤을 했다. 달리다
안녕하세요. ○○구치소에서 수감 중인 ○○○입니다. 저는 사실 작년 11월 9일에 3년 간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만났고, 이후에는 사회생활을 바르고 성실하게 했어야 했는데 또다시 잘못된 행동을 하여 출소 73일만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세 번의 생일을 수감시설에서 보냈는데… 올해는 정말 사랑하는 부모님과 보내고 싶었으나,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헤어지게 되어 네 번째(32번째) 생일을 또다시 수감시설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기준으로 생일까지 8일이 남았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어느덧, 출소하고 사회에 있었던 시간보다 재구속된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힘들게 절 걱정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바르고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갔어야 했지만 실망을 안겨드리게 되어 깊이 후회를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다면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습니다. 보통 편지 드릴 때 사랑한다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고, 접견 때도 얘기를 못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출정은 교정시설에서 법원으로 수용자를 이동시켜 재판을 받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법정이 재판 준비로 분주해지기 시작하면, 그 한편에 마련된 수용자 대기실도 함께 바빠지기 마련입니다. 이곳은 곧 자신의 형량과 처분이 결정될 재판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긴장감이 가득하고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일 것이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의외로 담담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옆 사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그렇듯, 이곳에도 재판을 여러 번 경험해본 이른바 ‘베테랑’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재판을 겪는 사람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판이 시작된 뒤에도 그런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막이 오르고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초범이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모습은 모두 비슷해집니다. 한결같이 최대한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려 애쓰고,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몸으로 뉘우침을 표현합니다. 어느 시점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나름의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막상
출정 검사 조사는 구치소의 담장을 벗어난 순간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동반하는 과정입니다. 구치소를 출발한 호송 버스가 법원에 도착하면, 지정된 보안 구역에 주차를 마친 뒤 수용자들을 하차시킵니다. 보통 법원과 검찰청은 서로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용자들은 외부 노출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조차 없는 어둡고 긴 복도를 따라, 각자 예약된 재판정으로 향하거나 검찰 조사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흔히 검찰청 조사실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던 엄숙하고 압박감 넘치는 공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모습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일반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예전의 고압적인 방식과 달리 최근에는 조사 분위기도 무척 부드러워진 편이며, 여성 검사들의 비중도 상당히 높아 처음 그 광경을 접하는 이들은 의외라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조사 과정은 피조사자의 태도와 사건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피조사자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조사는 비교적 신속하고 원만하게 마무리됩니다. 반면 혐의를 전면 부인하거나 복잡한 사실관계를 다투게 되면, 조사 내용은 방대해지고 시간 또한 한없이 길어집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나는 2016년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인은 아니고, 가깝고도 먼 북한에서 넘어왔다. 북에 남은 가족들이 나 때문에 처형당했을 수도 있다. 가족 생사도 모른 채 한국에 왔으니 잘 살아야 하는데 이 교도소란 곳에 오니 더욱더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남들은 가족 접견이 당연하지만, 나에겐 꿈과 같은 일이다. <더 시사법률>을 통해 수용자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연한 가족 접견이 누군가에게는 꿈에서조차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가족들에게 잘하시고 다들 건강하게 출소하세요. 북에 살아 계시는지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생사도 모를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소하고 이 마음 잊지 않고 부모님 몫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교도소란 곳에서 삼시 세끼 먹는 것조차 죄스럽습니다. 저를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목소리에도 위엄이 느껴지고 외모에도 근엄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인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눈이 크시고 미남형이지만 성격은 카리스마 있는, 기본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혼을 내시는 계장님. 구치소가 처음이라서 무섭고 생소했는데 701동 9실 룸메이트분들이 너무 잘 대해주셨습니다. 한 달 정도 생활을 해보니 이○○ 계장님도 너무너무 인자하시고 마음이 넓으신 분이라는 걸 느낍니다. 제가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해 옷을 잘 만들고, 옷 수선도 스스로 하는데 어느 날 바느질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노래를 흥얼거리게 됐습니다. 그때 계장님이 듣고는 지금 제정신이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저도 그때 너무 당황했습니다. 계장님께서 “여기 놀러 왔냐”고 크게 꾸짖었습니다.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저도 제 행동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장님이 비싼 영양 두유를 먹으라고 주시면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후 몇 번의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말로 주의 주시고 넘어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계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몰랐죠. 주위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던데 제가 이제 나이 먹어 보니 정말 실감이 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교도소에서 일명 '법자'라는 이름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징역을 9개월 넘게 살고 있는데, 이 법자 타이틀을 가지면 인간 대접 못 받습니다. 아참, 저 죄인이죠. 그러니까, 같은 죄인이라도 쓰레기 취급합니다. 제가 아무리 100% 잘 해도 법자는 30~50% 정도로만 사람 취급합니다. 이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 아닙니까. 여기 직원들도 수용자를 볼 때 영치금 확인 먼저 하죠. 쉽게 말해 영치금이 신분이고, 영치금이 많으면 징역 생활도 정말 편합니다. 내가 아무리 생활을 못 해도 다 용서가 됩니다. 사회나 여기나 똑같습니다. 돈의 힘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여기서의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필이면 여기 ○○교도소가 생긴 지 11년 되어 가는 새 교도소입니다. 때문에 위탁 공장도 얼마 없어 출역을 나가 영치금을 버는 것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여기서 징벌방에 네 번이나 가게 되었답니다. 영치금이 없다 보면 할
노숙자들이 밖을 돌아다니다 사고를 쳐 감옥에 들어온다 봄, 여름, 가을도 아닌 겨울에만 다시 봄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노숙자들이 겨울에만 감옥을 찾는 건 찬 바람을 피해 온 게 아닌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