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사건의 결과보다 의뢰인의 ‘변화’를 증명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랬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의뢰인이 아니라, 의뢰인의 가족들이었다. 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족들은 필자를 찾아와 간절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꽤 오랜 시간 면담을 통해 확인한 사건의 실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의뢰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감금하고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기록을 살펴보니, 1심에서 의뢰인은 감금 혐의만 인정하고 강간미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강한 처벌 의사를 근거로, 의뢰인의 태도를 ‘책임 회피’로 판단했다. 반성의 부재,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그의 대응이 판결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징역 2년의 실형이었다. 항소심을 준비하며 필자는 이 사건의 초점을 ‘사건’이 아닌 ‘사람’에 두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사건 이후의 태도, 반성, 그리고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한 사건의 열쇠다. 법은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
부산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신체를 1295회나 몰래 촬영한 남성이 구속됐다. 단순히 성적 충동이 강하거나 일시적 일탈을 저지른 개인의 문제로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뇌의 학습된 함정이 숨어있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쾌락을 느끼는 물질’이 아니라 ‘보상을 예측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얻을 때보다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의 순간에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결과가 아니라 탐색과 추구의 감정, 즉 ‘기대의 긴장감’을 강화시킨다. 이 남성의 경우도 성적 욕망 그 자체보다 “이번에도 들키지 않고 찍을 수 있을까?”라는 긴장감과 불확실성이 뇌의 도파민 회로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는 촬영의 성공이 곧 ‘보상’으로 연결되었고, 뇌는 그 경험을 기억해 반복 행동으로 강화했다. 그 결과 그는 성적 해소가 아닌 ‘은밀하게 성공했다’는 심리적 쾌감에 중독된 것이다. 도파민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금기와 위험’이 결합될 때 반응이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 성공할 때의 쾌감’은 단순한 쾌락보다 훨씬 강력한 신경학적 보상을 준다. 이 남성
요즘 해외에서 발생한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상담이 부쩍 늘었다. 이번 캄보디아 대규모 송환 작전이 있기 전부터 관련 사건을 다수 맡아왔고,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거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형사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았다. 세상에는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가 많다. 관광객이 붐비는 지역이나 도심 한복판에서는 소매치기나 절도, 차량 털이 등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선진국’으로 분류된 곳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밤길에 안심할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물론 치안이 다소 불안한 나라라 하더라도 관광 명소 위주로만 이동한다면 위험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러나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외진 지역을 지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차량 고장이나 교통사고를 가장해 접근하는 범죄도 종종 발생한다. 특히 단독 이동이나 심야 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흥가에서도 경계심을 낮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모르는 사람이 건넨 술에 약물이 섞여 금품을 빼앗기거나 숙소 위치를
사건을 맡다 보면, 단 한 번의 검토로 결론이 나는 일은 거의 없다. 서류 한 장, 문장 한 줄 속에조차 그 사람의 억울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그랬다. 표면은 ‘거대한 투자사기’였지만, 사건의 실체는 달랐다. 의뢰인들은 제조업 관련 투자와 스마트 무인 카페 사업을 병행하며 다수의 투자자와 계약을 맺었다. 시간이 흐르자 일부 투자자들이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고소했고, 고소인은 수십 명, 피해액은 수억 원대라고 주장했다. 적용 법률은 유사수신규제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었다. 기록을 처음 받았을 때 의뢰인들은 이미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있었고, 피해금액과 피해자 수가 크다는 이유로 판단은 유죄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고소장을 첫 줄부터 다시 읽었다. 고소장에 적힌 문장을 ‘사실’이 아니라 ‘주장’으로 놓고, 모든 진술을 원점에서 재검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고소 내용 상당 부분은 모호했다. 투자금과 개인 대여금이 의도적으로 뒤섞여 있었고, 핵심 쟁점인 ‘원금 보장 약정’의 존재를 뒷받침할 직접 증거가 보이지 않았다. 커피머신의 ‘제조상 결함’ 주장은 요란했으나, 실제 사용 및 관리 기록은 부실했고, 고장 보고의
최근 캄보디아 현지에서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이 적발되고, 한국인 피해자 및 피의자가 다수 확인되면서 이른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건’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으며, 앞으로 보이스피싱 사건은 한층 더 중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보이스피싱 수사는 주로 현금 수거책이나 대포통장 명의자 등 말단 조직원 검거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포렌식, 통신기록 분석, 계좌추적 기법이 발전하면서 수사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쉽게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모집책이나 관리책 등 중간 역할자들까지 통신 내역이나 금융 자료를 통해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최근 범죄단체조직죄(형법 제114조), 일명 ‘범단죄’를 보이스피싱 사건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이 조항이 적용될 경우 단순 전달책이라도 ‘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한 자’로 평가되어 공범으로 인정되고, 결과적으로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지시만 받았을 뿐”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수사·재판 환경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취해야 할 진술
지난 8월, 법원이 AI로 합성된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러 언론이 “AI 음란물, 실존 인물 아니면 무죄”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논란이 일었다. 해당 사건을 수행한 것은 우리 법인 형사팀이었다.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해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우선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피고인은 텔레그램 채팅방에 실존 여성의 얼굴을 나체에 합성한 사진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직접 합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텔레그램방에서 내려받은 사진을 ‘전달하기’ 기능으로 올린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우리는 수사단계에서 경찰이 사진이 처음 게시된 채널(편의상 ‘B방’)에 대한 수사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B방을 수사해야 피해자의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 이후 곧바로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며 관련 수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검찰은 합성물 ‘제작’ 혐의는 입증하지 못한 관계로 피고인을 합성물 ‘유포’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사진의 배경이 실제 헝가리 소재 온천으로 추정되고, 피고인이 참여했던 다른 텔레그램방이 ‘지인능욕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는 실존
‘교정청 독립’ , 기대 속에 커지는 우려 교정행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교정직원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교정청 독립’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교정본부를 법무부 외청으로 분리해 독립적 조직으로 승격시키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교정행정 현실을 고려하면 ‘독립’은 개혁이 아니라 폐쇄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교정행정은 최근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그 민낯을 국민 앞에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수감 중 52일간 총 94회의 접견을 진행했고, 누적 접견 시간만 395시간에 달했다. 독거실 주변 세 개의 수용실이 비워졌고, 전담 교도관 7명이 24시간 교대로 대기했다. 경호처의 요구로 가림막과 전용 출입구까지 설치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반면 지난 21일 프랑스에서는 제5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무장 경찰의 경호를 받자 교정당국은 즉각 반발했다. 한 교도소장은 “이는 교정조직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고, 교도관 노조는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교정시설의 질서와 지휘는 교정공무원이 행사한다는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
나는 1992년 1월 교정직 9급으로 임용되어 30년 넘게 교도소 현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지 2년이 되어가는 퇴직교도관이다. 교정의 날은 교도관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어야 하지만, 그날이 다가오면 내겐 언제나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교정의 날은 수용자 교화를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모든 교정공무원이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기념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현장은 다르다. 제정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이 행사는 일부 고위 간부와 교정위원들만의 잔치로 남아 있다. 정작 교도소의 최전선에서 밤낮으로 수용자와 마주하는 하급직 교도관들은 박수조차 받지 못한다. 현장의 땀보다 권력의 위치가 빛나는 날 2002년 첫 교정의 날 행사에서도 훈장과 대통령 표창은 대부분 고위간부와 교정위원들에게 돌아갔다. 장관 표창 몇 개가 말단 직원에게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교정의 날이 ‘현장 직원의 날’이 아니라 ‘지휘부의 날’로 고착된 것이다. 교정의 날이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한 현실은 단순한 의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교정행정 전반이 현장과 괴리된 채, 제도만 남은 구조적 병폐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퇴직 후 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수용 기간 동안 김현우 전 서울구치소장이 ‘특별 접견 장소’와 ‘전담 교도관팀’ 운영을 승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직 대통령의 ‘황제 수용’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교정행정이 법과 원칙보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구조로 굴절된 것은 아닌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21일 프랑스에서는 제5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안에서도 무장 경찰의 경호를 받자 교정당국이 즉각 반발했다. 한 교도소장은 “이는 교정조직에 대한 모욕”이라며 “법무부가 저명 인물의 안전조차 교정행정이 보장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교도관 노조도 “보호 명목으로 무기를 교도소에 들이는 것은 금기를 넘는 행위이며,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예외 조치의 철회를 요구했다. 전직 대통령이라도 교정시설 내 질서와 지휘체계는 교정공무원이 행사한다는 원칙이 확고했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교정행정 대응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윤 전 대통령은 52일간 총 94회의 접견을 진행했고, 누적 접견 시간은 395시간에 달했다. 독거실 주변 세 개의 수용실이 비워졌고, 전담 교도관 7명이 24시간 교대로 대기했다
변호사 선임이 필요한 상황에서 구치소에 있게 되면 조급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이때 잘못된 정보나 화려한 홍보에 의존하게 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아래의 세 가지 상황만 피해준다면, 불량 변호사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① 가족이나 친지의 “변호사 광고를 봤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결정하기 화려한 광고가 꼭 뛰어난 변호사를 뜻하진 않는다. 파워링크나 상단 노출의 방식으로 변호사 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비용이 많이 드는 광고를 통해 의뢰인을 유치한 뒤, 그 값을 수임료에 반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유명한 광고가 곧 좋은 변호사라는 단순한 논리는 위험하니 가능한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직접 전화 면담이나 접견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② “전관 변호사”라는 말에 큰 기대 가지기 판사 출신, 검사 출신이니 잘 봐줄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생각보다 위험하다. 물론 전관 변호사들은 재판 절차나 수사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경험도 풍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관예우는 이젠 옛날 이야기로, 요즘 판검사들은 공정성을 매우 중시한다. ‘연줄’에 의한 승소나 무혐의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따라서 전관 출신인지를 따지기보다 객관적인 전문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