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시간은 늦을 수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멈춘 그곳에서, 죄의 무게는 반드시 따라온다.”
‘자유형 미집행자’(이하 미집자)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집자는 실형이 확정되고도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말한다.
2024년 1월 기준, 징역형이 확정되고도 여전히 형을 살지 않고 거리에서 활보 중인 ‘자유형 미집행자’(이하 미집자)는 6,155명. 역대 최고치다.
이들은 사실상 실형이 확정된 ‘도망자’다. 법은 이들을 붙잡지 못하고 있고, 예산조차 없다.
지난 22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실형이 확정되고도 형을 집행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던 ‘자유형 미집행자’(이하 ‘미집자’) 이 회장의 도주극과 검거 과정을 다뤘다.
전세사기로 징역 8년 3개월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1심 재판 도중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그대로 잠적했다. 이후 전주에서 사우나 대표로 행세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검찰이 체포에 성공한 것은 4년이 지난 2024년 서울 도심이었다.
이 회장은 주변에 성공한 자산가로 알려졌고, 자서전까지 출간했지만 실제로는 허위 계약과 이중 계약을 반복하며 다수의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가로챈 사기범이었다.
전세계약서를 앞세워 세입자들로부터 보증금을 받고, 동시에 월세 계약을 숨겨 이중계약으로 금융권 대출까지 받은 ‘돌려막기’ 전세사기의 대표 사례였다.
이 회장은 도주 기간 전주 사우나 대표로 위장해 살면서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직원 임금을 체불하고, 또 다른 투자 사기를 벌인 정황도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그는 늘 ‘억울하다’, ‘경기 탓이다’는 변명만 반복했다”고 분노를 표했다.
의정부지검 집행팀은 4년 뒤 이 회장이 타인 명의로 병원 진료를 받는 정황을 포착했고, 조력자를 추적한 끝에 서울 도심에서 그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이 회장은 “어머니 같은 분을 간병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고, 도주 사유를 둘러댔다. 검거 8일 만에 항소장을 제출한 이 회장은 현재까지도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자유형이 확정되고도 집행되지 않은 ‘자유형 미집행자’는 6,155명.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집자는 대개 형사재판 중 불출석하거나 선고 당일 실형이 예상되자 도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행법상 ‘도주죄’로 처벌되지 않는다. 형법상 도주죄는 ‘구금 상태에서 탈출한 경우’에만 해당되며, 형이 확정됐지만 구금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망친 미집자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로 인해 수사기관은 미집자에 대해 통신기록, 계좌를 추적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적 공백이 미집자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형이 확정된 자임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등 기본적인 강제 수사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오히려 수단 면에서 피의자보다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관련 기관이나 기업에 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상대가 영장을 요구하거나 거절할 경우 마땅한 대처 방안이 없다. 지난 2022년 국회에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원과 검찰이 이견을 보이면서 법안 처리가 불발됐다.
검거 주체 역시 혼란스러운 구조다. 교도소에서 수용 중인 수형자가 탈옥한 경우엔 법무부 교정본부가 초동 조치 후 경찰로 역할을 넘긴다. 반면, 미집자는 형이 확정됐지만 미수감된 상태여서 검찰이 직접 추적해야 한다.
미집자 추적에 투입되던 특정업무경비(특경비)가 전액 삭감된 것도 문제다. 검찰은 각 지역청에 검거팀을 두고 미집자를 추적하지만, 수단은 탐문, 잠복, 설득 등 전통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미집자 검거율은 60% 수준에 그치며, 미검거자는 계속 늘고 있다.
특히 특경비 3억 3,000만 원이 전액 삭감되면서 지난 1월 미집자 검거 건수는 전년 평균 대비 30% 줄어든 217건으로 급감했다.
법조계에서는 도주 자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시하는 등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법인 제이케이 김수엽 대표 변호사는 “피고인이 재판에 불출석하다 선고만 받고 도주하면 자연스레 미집자가 된다”며 “도주죄처럼 형을 회피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처럼 미집자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하고, 통신영장 청구나 계좌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야만 이들에 의한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