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제도는 검찰 기소 전이라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2일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실은 <더 시사법률>에 “‘조건부 석방제도’는 불구속 수사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면서도, 피해자 보호까지 고려할 수 있는 제도”라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체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전국 구치소의 수용 부담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회에는 이 제도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해당 개정안은 2023년 12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법원은 이날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되면 기소 전 보석의 형태로 조건부 석방을 허용할 수 있다”며 “이는 불구속 수사 원칙에 부합하며 현행 인신구속제도의 한계 및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검찰이 우려하는 증거 인멸 가능성에 대해서 법원은 “증거 인멸 우려가 충분한 경우나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있는 경우 조건부 석방 예외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 초기 10일간 구속 상태를 유지하고 공소 제기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또 전자발찌 부착, 주거지 제한 및 출국 금지, 공범 또는 관계자 접촉 금지, 정기적 출석 의무 등 사안별 다양한 조건으로 증거 인멸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예외적인 구속연장 사유는 구속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국가형벌권의 실현에 지장을 주는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건부 석방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피의자의 구속기간 단축으로 인해 수사기관의 준비 시간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수사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법원은 “수사기관의 부담을 고려해 구속기간 자체를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나 가이드라인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구속기간을 6개월로 하되 3개월마다 구속기간을 갱신하는 방향 △현행 구속기간을 유지하여 구속기간을 2개월로 하되 2개월마다 구속기간을 갱신하는 방향 등의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구속 여부가 보석금 등 경제력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법원은 “재산에 따른 형사절차의 왜곡 우려는 크지 않다”며 제도 도입 찬성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보석제도와 마찬가지로 조건부 석방도 다양한 비금전적 조건을 병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석제도는 서약서 제출, 주거 제한, 접근금지, 출석보증, 피해자 보호 조치, 마약류 사용 금지, 위치추적장치 부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건이 구성되고 있다. 법원은 “보증금 납입이 어려운 경우에도 법원이 피의자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유가증권이나 타인 보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법원은 조건부 석방제도가 빈곤층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형사소송법상 ‘일정한 주거 없음’이 구속 사유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조건부 석방은 제도적으로 주거 불안정 상태에 있는 피의자에게도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국회에서 ‘조건부 석방제도’ 관련 논의가 있을 경우 위와 같은 내용들을 면밀히 검토해 구체적인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라며 “제도적 실효성과 형평성을 모두를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대표 변호사는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될 경우, 보석금 납입이 어려운 피의자에게도 다양한 비금전적 조건을 적용해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조건부 석방은 구속 사유를 보다 탄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현재 전국 교정시설이 한계 수용인원을 초과한 채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건부 석방제도는 피의자의 인신구속을 최소화함으로써 구치소 과밀 문제 해소에도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