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집행순서 변경은 ‘검사 마음대로’? 정형화된 기준 없어

불복 절차 존재하나…일선 판단 의존 여전
제도 신뢰 확보 위한 판단 기준 도입 필요

“그밖의 수형자가 범한 범죄의 내용이나 수형자의 수형 태도, 가석방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형집행순서를 변경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이는 경우.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검토한바, 신청인은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를 해킹하고… 집행유예기간 중에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른 점에 비추어 형집행순서변경을 허가하는 것이 부적절함.”

– 검찰청 형집행순서 변경 불허사유

 

‘형집행순서 변경’ 제도는 형기를 나누어 선고받은 수형자가 보다 가벼운 형부터 먼저 집행받기를 희망해 검찰에 신청하는 제도다.

 

수형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빨리 가석방 요건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더시사법률>은 대검찰청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실제 제도의 운용 현황과 판단 기준, 통계 관리 실태에 대해 확인했다.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형집행순서 변경은 형사소송법 제462조 및 법무부령 '자유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 제39조에 근거한 제도다.

 

원칙적으로 두 개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무거운 형부터 먼저 집행하되, 예외적으로 검사의 판단과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형 집행 순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제39조에 따라 벌금형은 자유형의 집행으로 인해 형의 시효가 완성되는 경우가 아닌 한 자유형 집행을 정지하고 노역장 유치 집행을 먼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같은 구조는 가석방 요건과 관련돼 있다. 무기징역은 20년 이상, 유기징역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해야 가석방 신청 자격이 생긴다. 복수 형벌의 경우 각 형별로 3분의 1을 채워야 대상이 된다.

 

예컨대 A범죄로 3년, B범죄로 3년으로 총 6년형을 선고받은 수형자는 합산해서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가석방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A와 B에서 각각 1년의 형기가 지나야 가석방 대상이 된다.

 

만약 A범죄 1년 복역 이후 B범죄로 형 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A범죄 3년을 모두 복역한 후 B형기가 1년이 지난 4년 차 시점부터 가석방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만 실무상 가장 큰 논란은 ‘사정 변경’이나 ‘죄질 불량’과 같은 불허 사유가 명확한 기준 없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형집행순서변경 허가 또는 불허는 교정시설 소재지 관할 검찰청에서 개별 사건의 타당성에 따라 판단한다”며 “정형화된 판단 기준을 제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수형자의 중독 치료 이수, 재범 위험 완화, 수형 태도 개선 등이 사정 변경 사유로 고려될 수는 있으나, 모든 사례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형집행순서 변경 허가 여부가 검사 재량에 좌우된다는 점은 결국 가석방 여부까지 검사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형집행순서 변경이 불허된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한다. 형사소송법 제489조에 따라 피형사처분자, 법정대리인, 배우자는 판결을 선고한 법원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이의 신청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 제491조에 따라 즉시항고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선 수형자나 가족들이 해당 절차 자체를 모르거나, 실질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법령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제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형집행순서 변경이 불허된 경우 1년간 재신청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검찰청은 <더시사법률>에 “검찰은 1년 이내 재신청 금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불허 사유가 해소되었다면 언제든 재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수형자가 교정 교육 이수, 재범 위험 완화 등 사정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나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형집행순서 변경 제도가 검사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된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의 투명성 제고와 신뢰 회복을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은 현재 관련 신청 건수, 허가율, 불허 사유별 통계 등을 별도로 작성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형집행순서 변경 제도는 수형자의 이익을 위해 가석방 요건을 조기에 갖추고 형 집행의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형벌 집행 방식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거나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제도의 남용이나 자의적 판단이라는 의심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선 청별 기준을 정리한 가이드라인과 연례 통계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