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우체부] 도주 우려 없는데도 기각… 보석 기준이 뭔가요?

 

Q. 서울구치소 수감중인 000입니다. 징역3년을 받고 항소심에서 보석신청이 기각되었습니다. 보석결정문을 받아보니 형사소송법 제95조 제1호(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 초과의 징역이나 금고의 죄)와 제4호(도주우려사유)로 기각한다고 적시되어있는데, 제가 징역 10년은 아니잖아요? 이건 잘못 적용된 법조항 아닌가요? 상고심에서 법령위반 주장할 수 있나요?


○○○ 구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JK의 이완석 변호사입니다.


귀하는 항소심에서 보석기각결정을 받았는데, 기각사유에 적시된 적용법조가 본인에게 잘못 적용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주셨습니다.


먼저 보석허가 사유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귀하의 질문에 답변드리고자 합니다. 보석허가 사유는 크게 필요적 보석과 임의적 보석으로 나뉘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말씀드리면 ‘필요적’이란 말은 ‘반드시’라고 읽으면 되고, ‘임의적’이라는 말은 ‘(재판부) 맘대로’라고 읽으면 납득이 가실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보석청구가 있을 때에는 일정한 예외 사유(형사소송법 제95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보석을 허가하여야 하는데, 이를 필요적 보석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일정한 예외사유(①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② 누범 또는 상습범, ③ 증거인멸 또는 인멸할 염려, ④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 ⑤ 주거 불분명, ⑥ 보복 또는 보복우려)가 있으면 법원이 보석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법한 결정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외 사유에 해당하면 절대로 보석 허가를 받을 수 없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설령 형사소송법 제95조 각호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96조에 따라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법원은 직권 또는 피고인 등의 청구가 있으면 재량으로 보석을 허가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재량보석 또는 임의적 보석이라고 부릅니다. 법원이 재량에 따라 허가하거나 기각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변호인이 보석허가청구서를 작성하는 경우, 우선 첫 번째로 필요적 보석사유를 주장하면서도, 설령 필요적 보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주장하여 법원의 재량으로 보석을 허가해 달라는 내용의 보석허가청구서를 작성합니다.


보석허가 결정에 대하여는 검사가 항고를 제기할 수 있고, 보석기각 결정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항고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항고기간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전엔 미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최근 법원의 보석허가 결정에 대해 피고인이 보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구속기간(1심 6개월) 만료를 앞두고 재판부가 보증금 1억원, 주거제한 등의 조건과 함께 내란사건 관련 피의자, 참고인, 증인 등과 연락하거나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건을 달아 조건부 보석허가 결정을 내렸는데,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측이 이를 거부하고 보석허가 결정에 대해 항고 및 집행정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굳이 조건부로 나가느니 구속기간 만료 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롭게 석방되겠다는 의도인데, 재판부는 하루 빨리 나가라고 하고 피고인은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진기한 광경입니다. 특히 보통의 경우 피고인 측에서 보석허가신청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달리 위 사건의 경우 검찰이 재판부에 조건부 보석을 요청한 것이어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얘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있지만, 같은 재판부에서 윤석열 전대통령에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적이 있는데, 이 경우 검찰 내부에서도 항고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가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다투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하여 결국 석방 후 불구속 상태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다시 귀하 질문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결국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는데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 이상의 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법에서 규정된 법정형과, 피고인에게 선고된 선고형이 달라 생기는 혼동입니다. 법정형, 처단형, 선고형에 대한 이해가 헷갈릴 수 있어서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법정형의 경우입니다. 먼저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유기징역은 최소 몇 년부터 최대 몇 년까지 가능할까요? 정답은 최소 1개월부터 30년 이하까지이고, 가중사유가 있는 경우 최대 50년까지 가능합니다. 잘 염두에 두시고 아래 설명을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실형 전과가 있는 A라는 사람이 출소 후 3년 이내(누범)에 강간죄를 범하였다고 가정합시다. 형법 제297조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므로, 이때 강간죄의 법정형의 하한은 「3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또한 유기징역 법정형의 상한은 30년 이하이고, 누범·경합범 등 가중 사유가 있는 경우 최대 50년까지 선고 가능합니다(형법 제42조). 따라서 강간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 30년 이하의 유기징역입니다. 또 다른 예로 B라는 사람이 강간상해죄를 저질렀다면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입니다(형법 제301조). 이와 같이 법에 정해진 형량을 법정형이라고 부릅니다.


둘째, 처단형은 위 법정형에 가중, 감경사유를 고려해서 확정된 형벌의 범위라고 보면 됩니다. 재판부는 법정형에 덧붙여 법률상 가중사유를 고려해서 피고인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를 계산하는데, 이를 처단형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누범기간 중 강간죄를 범한 A의 경우 장기 2배를 가중하므로, 처단형의 상한이 50년(유기징역의 최대 상한)까지 확장됩니다. 다른 가중·감경사유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누범기간 중 강간죄의 처단형은 3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심신상실 등 법률상 감경을 하거나, 경합범 가중이나 법원의 작량감경을 통해 처단형의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한편 강간상해죄를 범한 B의 경우, 재판부가 죄질에 따라 무기징역을 선택할 수도 유기징역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무기징역을 선택하고 법률상 감경사유가 있어 감경한다고 가정한다면,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범위에서, 다른 가중·감경사유를 고려하여 처단형을 정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선고형입니다. 선고형은 통상 위에서 계산한 처단형의 범위 안에서 재판부가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형을 정하여 피고인에게 최종 선고하는 형입니다.


결론적으로 귀하의 경우 1심 판결의 최종 선고형은 징역 3년이 선고되었지만, 법정형이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어서, 재판부가 필요적 보석의 예외(형사소송법 제95조 제1호)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으로 보이고, 선고형(3년)과 법정형(10년 이상)을 미처 구별하지 못해 생긴 오해라고 여겨집니다.


참고로 법정형이 10년 이하인 범죄는 폭행죄, 협박죄, 절도죄, 상해죄, 사기죄, 업무상횡령죄 등인데, 만약 귀하가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10년이 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항소심 재판부의 보석기각 결정에 대해 항고할 수 있습니다. 보석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는 판결 선고 후에도 가능합니다.

 

단 원심결정을 취소하여도 실익이 없게 된 때에는 예외로 합니다(형사소송법 제404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