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주가조작 범죄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잇따라 낮은 형량을 선고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률상 무기징역까지 가능함에도 법원이 범죄수익 입증 문제를 이유로 실형 선고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며 전향적 판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자본시장법 제443조는 시세조종행위로 얻은 이익이 50억 원을 초과할 경우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범죄수익이 존재함을 명확히 입증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해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6개월에서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주가조작 사건 주범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더시사법률이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러한 경향은 과거부터 나타나고 있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은 ‘하한가풀기’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한 사건에서 핵심 피고인에게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호재성 기사를 유포하고 동시호가 시간대에 대량 매수 주문을 넣어 하한가 매도 물량을 소진시키는 등 계획적·조직적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했지만, 모두 실형을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2014고단4691, 서울남부지법 2015고단12682·17594, 서울남부지법 2017고단21563 사건에서도 통정·가장매매, 고가매수, 물량소진, 시·종가 관여 등 전형적 시세조종 주문 유형이 인정됐음에도, 법원은 실제 취득이익이 크지 않거나 범행 목적 부인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2024.9.12. 선고 2023노649 판결에서도 상장사 대표이사와 증권사 직원, 주포 등 다수 피고인이 2년 넘게 조직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였음에도 전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대표이사(E)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억 원을 선고받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A와 주포 C 역시 각각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실형을 피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서울남부지법이 선고한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주주행동주의’를 내세워 4개 종목을 매집하고 시세조종성 주문을 반복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경영권 분쟁 등을 통해 지분을 고가에 매도하려 했다. 그러나 법원은 주범 1명만 실형으로 처벌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에도 서울고법은 상장사 대표이사와 증권사 직원, 시세조종 주포 등 다수 피고인이 2년 넘게 조직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인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피고인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대표이사와 주포, 증권사 직원 등 범행의 핵심 인물들조차 실형을 피했다.
이처럼 법원은 시세조종 행위의 조직성과 사회적 해악성을 인정하면서도, 범죄수익 입증이 부족하면 대부분 집행유예로 양형을 낮추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본시장법상 주가조작이 시장에 끼치는 파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득이 없었다는 점을 지나치게 고려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2023년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이후 법을 개정했다. 개정 자본시장법은 부당이득액을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그 이득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형사처벌뿐 아니라 행정 제재 수위도 강화한 조치다.
그러나 개정된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형사처벌 근거로 삼은 대법원 판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선 법원에서는 “형벌법규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며 개정된 방식을 양형 근거로 활용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분위기가 있다. 일부 판사들은 “과도한 산정 방식은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사회적 해악성을 고려할 때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주가조작은 불특정 다수 투자자에게 예측 불가능한 손실을 전가하는 범죄로 단순 재산범죄보다 중대성이 높다”며 “범죄수익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현실은 자본시장법의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법원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주가조작 사건의 양형은 현실과 괴리된다는 비판이 계속될 것”이라며 “자본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법원이 개정된 산정 방식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범죄의 중대성에 상응하는 중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