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북은 두 개의 국가…비핵화 협상 없을 것”

“李의 비핵화론, 北 무장해제 목적"
美 대해선 조건부 대화 가능성 언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을 “철저히 이질화된 두 국가”로 규정하며 한국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했다. 반면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포기한다면 북미 대화에는 나설 수 있다는 조건부 메시지를 내놔 한반도 정세의 긴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2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마지막 날 연설에서 “우리는 한국과 마주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치와 국방을 외세에 의존하는 나라는 통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식민지 속국”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을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라고 지칭하며 “국경을 사이에 둔 두 개의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과 1953년 정전협정,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거론하며 “이미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두 개 국가로 존재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2023년 말 선포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핵화와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강경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핵 보유는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이었고 헌법에 명기돼 있다”며 “비핵화는 위헌 행위로, 제재 완화를 위해 협상할 일은 영원히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동결-감축-비핵화’ 3단계 구상을 “전임자 숙제장을 옮겨 적은 복사판”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군사적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전쟁억제력은 지금 행사되고 있으며, 제2의 사명이 가동되면 한국과 주변 동맹국의 군사조직은 삽시에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미 2022년 핵무력 정책법령을 통해 선제공격 가능성을 공표한 바 있다.

 

다만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진정한 평화 공존을 논의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참석 예정인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미 간 ‘깜짝 회동’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양곡관리법, 지적소유권법, 도시경영법 등이 채택됐다. 김 위원장은 연설 말미에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 파병 군인과 유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북중러 연대를 과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