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피해보상 업무를 맡은 사람이 확보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단체대화방을 만들고, 그 대화방에서 주민의 실명과 동·호수를 공개했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주민들이 이미 피해보상과 관련해 개인정보 사용에 동의했고, 동의서에 직접 실명과 동·호수를 기재한 이상 단체대화방 내에서 해당 정보가 사용되더라도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행정사 A씨 사건에서 벌금 3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인근 신축 공사와 관련된 피해보상 절차를 위임받으며 주민 280여 명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았다. 이후 2022년 4월 이 정보를 이용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만들고 자신의 견해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일부 주민들의 실명과 동·호수를 호명해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무단 누설했다”는 취지로 기소했으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제2호와 제71조 제9호의 금지행위 및 처벌 규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1심은 단체대화방 참여 주민들이 실명 대신 대화명을 사용한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반대 의견을 개진한 주민을 특정해 실명·동호수를 게시한 것이 고의적 개인정보 누설이라고 보고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형이 과하다는 이유로 벌금 30만 원으로 감액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단체대화방 참여 주민들은 해당 대화방에서 자신의 실명과 동·호수가 사용되는 데 대해 사전 동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주민들에게 피해보상 업무를 위해 조정신청, 국가기관 탄원, 대화방 개설 등을 포함한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했고, 주민들은 그 동의서에 스스로 실명, 동·호수, 전화번호 등을 기재하고 서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스스로 실명과 동·호수를 밝히거나, 다른 주민을 대화방에 초대하면서 상대의 정보를 언급하는 등 대화방 내에서 이미 개인정보가 공유된 정황도 확인됐다. 찬조금 납부 명단 등의 정보도 대화방에서 공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이 사건 수사 개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고발로 이뤄졌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은 '단체대화방에서 실명과 동·호수가 사용·공개되는 것을 알고 서명 동의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급심에서는 단체대화방 등에서 개인정보를 공개한 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온 판례들이 다수 있다.
법원은 ‘공개 행위의 목적’을 중시해 왔다. 개인정보 ‘누설’은 아직 정보를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알려주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기존 판단을 비롯해, 조합 내 문제를 알릴 공익적 목적이 있더라도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등을 비실명 처리 없이 공개하는 것은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도 유지되어 왔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매우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기반하고 있어 확대 해석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만약 동의서에 ‘카카오톡 대화방 개설’과 같은 구체적인 이용 방법에 대한 명시가 없었거나, 피해 주민들이 동의 사실을 부인했다면 대법원의 결론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 “포괄적인 업무 동의만 받은 상태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다수가 참여하는 온라인 공간에 공개하는 행위는 여전히 개인정보보호법상 ‘목적 외 이용’ 또는 ‘누설’에 해당할 수 있으며, 형사처벌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