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앞두고 유관순 조롱 AI 영상 확산…수사 착수도 난항

경찰, 법 적용 검토 단계…내사 착수도 어려워
생성형 AI 악용 늘지만 관련 입법은 초기 단계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를 희화화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현행 법체계로는 제작자를 형사 처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 틱톡에 게시된 유관순 열사 조롱 영상을 인지하고 법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이나 아직 내사에는 착수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된 영상은 한 이용자가 지난 22일부터 게시한 콘텐츠로 유관순 열사가 일장기에 호감을 보이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됐다.

 

해당 영상들은 2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빠르게 확산됐고 공론화 이후에도 추가 게시가 이어지다 플랫폼 측 삭제 조치 이후에야 계정 활동이 중단됐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만 수사 착수에는 법적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 고인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 행위는 형법 제308조의 사자명예훼손죄 적용이 검토되는데, 이 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대법원은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구체적 사실의 적시와 그 내용의 허위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72도1798, 2009도14127).

 

문제는 이번 영상처럼 조롱이나 희화화 또는 풍자적 재구성 형태의 표현은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진술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법원은 풍자적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표현의 성격과 수용자의 인식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해 왔다.

 

실제로 2015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대학 교수가 기말고사 시험문제에서 특정 사망 인물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사례를 제시한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을 심리했다.

 

원고 측은 시험문항이 망인을 비하하고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와 유족의 인격권 및 추모감정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문제된 시험문항이 실제 인물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일부 포함하고 있으나 대학 강의 과정에서 사용된 가공 사례 형식의 표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이를 접한 수강생들이 해당 내용이 실제 사실이 아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란 시간적·공간적으로 특정 가능한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또는 진술을 의미한다”며 “사실관계를 토대로 이를 풍자적으로 재구성해 표현 상대방이 진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해당 표현이 다소 부적절하더라도 대학 내 교육 과정에서 이루어진 행위로서 학문의 자유 보호 범위에 해당한다며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법리 구조에 따라 이번 AI 영상 역시 구체적인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기 어려울 경우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욕죄 적용 역시 쉽지 않다. 형법상 모욕죄는 생존 인물을 보호 대상으로 하는 범죄로 해석되고 있어 역사적 인물이나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표현에는 직접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현행 형사법 체계에서는 허위의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꾸며낸 경우가 아니라면 수사 착수 자체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형사 책임과 별도로 민사상 책임이 문제될 여지는 있다. 법원은 사자의 사회적 평가가 훼손되고 그로 인해 유족의 추모감정이 침해된 경우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실제로 허위 사실로 망인의 명예를 훼손한 표현물에 대해 삭제 또는 배포 금지와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도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플랫폼 자율 규제나 방송통신심의 제도를 통한 대응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 관련 기구는 아직 위원회 구성이 완료되지 않아 즉각적인 심의가 어려운 상태로 알려졌다. 심의 절차 역시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구조여서 신속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틱톡 측은 해당 계정이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돼 삭제 조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AI 기술이 역사적 인물 복원 등 긍정적 활용 사례 중심으로 논의돼 왔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가 조롱성 콘텐츠에 활용되는 문제를 둘러싼 규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OpenAI는 지난해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이미지를 활용한 영상 생성 기능을 제한한 바 있다.

 

반면 국내 입법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 상당수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역사적 인물 모독이나 생성형 AI 악용 문제를 직접 규율하는 법제는 미비한 상황이다.

 

지난해 4월 사자 모욕죄 신설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생성형 AI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종합적 입법 논의는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