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사실상 폐지’ 7년…입법 공백에 의료·형사체계 충돌

불법 약물 유통·비급여 부담 등 현장 혼란 지속
“형사처벌 대신 관리체계 구축 필요” 지적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이 지났지만 후속 입법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기존 형사처벌 규정은 효력을 상실했지만 이를 대체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서 의료 현장과 형사사법 체계 간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2019년 4월 11일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2020년 말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

 

당시 헌재는 임신 유지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보면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지까지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 역시 형사처벌만으로는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를 이루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법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국회와 정부 차원의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 일정과 종교계 반발 등 정치적 부담 속에 논의가 장기간 지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제도 공백이 길어지면서 임신중지 시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로 남아 병원마다 비용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나 불법 유통 경로에 노출되고 있다.

 

실제 불법 유통 문제도 확인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온라인상에서 적발된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 유통 건수는 2641건에 달했다.

 

문제는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관련 행위가 여전히 형사처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자격자의 시술, 임부의 동의 없는 시술, 의료과실로 인한 사망 등은 각각 의료법 위반이나 상해·치사 등 다른 범죄로 평가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의료 현실과 형사사법 체계 사이의 해석 충돌이 지속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임신중지 시술과 관련해 의료진에게 중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다만 해당 사건은 단순한 임신중지 여부를 넘어 시술 경위와 결과에 따라 별도의 범죄 성립이 문제된 사안으로, 현행 법체계의 공백과 해석상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배우자가 임신중지를 강요하거나 무자격자 시술로 이어진 경우에는 형사책임 구조가 더욱 복잡해진다.

 

현행 형법은 임부의 동의 여부에 따라 ‘동의 낙태’와 ‘부동의 낙태’를 구분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산모가 사망할 경우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에 강요나 폭행 등 다른 범죄가 결합될 가능성도 있어 사건은 다층적으로 평가된다.

 

또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형법상 처벌이 배제되지만 적법한 시술 과정에서 사망 결과가 발생한 경우 이를 낙태치사로 볼지 과실치사로 볼지에 대해서는 해석상 논쟁이 남아 있다.

 

여성계는 임신중지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의료 가이드라인 마련과 함께 안전한 약물 도입과 공공의료 체계 내 관리가 필요하다는 요구다.

 

정치권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관련 부처 역시 제도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임신 경험 여성의 56.3%가 임신중지를 고려한 적이 있었으며 실제 경험 비율도 40%에 달했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입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형사처벌 체계와 의료 현실 사이의 간극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한 제도 정비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