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어떤 수용자의 어머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뗀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들이 성범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데, 수용자 가족 커뮤니티에서 ‘가석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혹시… 가능성이 있을까요?” 말끝을 흐리며 묻는 질문 속에는 죄를 덮어달라는 요구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항변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른 뒤라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 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간절하게 ‘가석방’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석방이라는 문은 과연 어떻게 열리는 것일까?
가석방이란 형법 제72조에 따라 자유형의 집행을 받고 있는 자가 ‘행상이 양호하여 뉘우침이 뚜렷한 때’ 일정한 조건 아래 형기 만료 전에 석방하는 행정 처분을 말한다. 동법 제76조에는 가석방 이후 조건 위 반으로 취소되거나 실효되는 일이 없다면 가석방 기간 이후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수용자가 충분한 반성을 보이고 있으며, 형기 만료 이전에 사회로 복귀하더라도 재범의 위험성이 낮다고 국가가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 남은 형기의 집행을 유예하는 제도라는 의미다. 교도소에서 얼마나 형을 살아야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형법 제72조 제1항에서는 성인 수용자에 대해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무기의 경우 20년, 유기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에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무상에서는 선고받은 형의 최소 8~90% 이상 집행되어야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형기는 선고형을 의미하며, 사면 등을 통해 감형된 때에는 감형된 형이 기준이다. 참고로 소년 수용자에 대해서는 소년법이 적용되는데, 소년법 제65조에는 “징역 또는 금고의 선고를 받은 소년은 무기형의 경우 5년, 15년의 유기형의 경우 3년, 부정기형에는 단기의 3분의 1경과 시”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도록 정해두었다.
이때 오해해선 안 되는 내용이 있다. 가석방은 수용자 본인이나 그의 가족, 혹은 변호사가 ‘신청’해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석방은 신청제가 아니라 교정 당국의 내부 심사와 판단에 따라 진행되는 행정적 결정 영역에 속한다.
가석방은 교도소 측에서 가석방 대상자를 선정하고 교도소장이 가석방을 신청하면 심사위원회에서 심 사를 진행한 뒤 법무부 장관이 허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나 가족, 변호사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정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가석방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단순히 형기의 집행 비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양호한 행상’이 주요한 요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상이란 수용자가 교도소 안에서 하루하루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의미한다.
수용자가 교도소 안에서 쌓아온 삶의 태도와 변화가 가석방이라는 문을 열도록 돕는 것이다. 수용자가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얼마나 진지한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 규율은 꾸준하게 준수 했는지 등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는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심사표에 정리된다.
따라서 가석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수 용자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가 장 중요한 일은 결국 하나로 수렴 된다. 바로 ‘행상’을 바르게 유지 하는 것이다. 형 집행률, 행형성적 등 가석방에 필요한 객관적인 요건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시점이라면 교정당국에 가석방 검토를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석방 처분이 내려질 경우, 그 기간 역시 법으로 명확히 정해져 있다. 형법 제73조의 2 1항에 따르면 무기형을 선고받은 수용자의 경우 그 기간은 10년으로 일정하고, 유기형의 경우 남은 형기로 하되 그 기간이 10년 을 초과할 수 없다.
교정시설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늘어지는 날도 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고개를 떨구는 날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바뀌고자 하는 마음, 조금 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정행정은 수용자의 말보다 행동을, 순간의 다짐보다 지속적인 태도를 본다. 작은 성실함이 반복 되고 하루의 선택이 쌓여 변화의 궤적을 이룰 때 그 기록은 분명히 남는다. 가석방은 요행이나 기적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변화의 산물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선택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