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곗돈 15억 어디로“…서울 가락시장 계주 잠적에 상인들 발칵

상인 100여명 피해…계주 행방 추적 중
‘기망 여부’ 핵심, 특경법 적용 가능성도
”다중 계‧고액 계는 신중하게 가입해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상인 모임의 계주가 곗돈 약 15억원을 들고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가락시장 상인 모임의 계주인 50대 강모씨를 입건해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강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도 내렸다.

 

강씨는 지난달까지 정상적으로 곗돈을 수금해오다 돌연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락시장 상인 100여 명을 상대로 계를 운영하며, 일반적인 월 단위 수금 방식이 아닌 시장 특성에 맞춰 매일 5만~10만원씩 곗돈을 걷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점포는 100여 곳에 달하며, 피해 금액은 약 15억원으로 추산된다. 일부 상인들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의 곗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해당 계는 상인들 사이에서 수십 년간 대를 이어 운영돼 온 모임으로, 피해자들은 강씨를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인물이라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맡겼다고 전했다.

 

강씨는 잠적 직후 피해자들에게 “정리되는 대로 연락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경찰에는 피해 상인들로부터 40여 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현행 형법 제347조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계를 조직할 당시부터 이미 과도한 개인 채무를 안고 있었거나, 계원들에게 곗돈을 정상적으로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계를 운영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한 채무불이행과 달리 계 가입 단계에서의 기망 여부가 형사 책임 판단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피해액 규모가 쟁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곗돈 편취 금액이 15억원에 이르는 만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경법 제3조 제1항 제2호는 사기·횡령·배임 등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정한다.

 

법원도 유사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2년 부산고등법원은 별다른 수입이나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계를 운영하며 총 17억원이 넘는 계금을 편취한 계주에 대해 “계 가입 당시부터 정상 지급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며 사기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서 2016년 서울고등법원 역시 과도한 채무를 숨긴 채 새로운 계를 조직해 총 39억원의 곗돈을 편취한 계주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판결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계는 사적 채권·채무 관계에 해당해 계주가 도주할 경우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며 “가입 전 계주의 재정 상태와 계 운영 방식, 곗돈 사용 구조 등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일반적인 투자처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만큼 복수의 계에 가입할 경우에는 비교적 이른 순번에 곗돈을 받는 계와 후순위 계를 분산해 참여하고, 계주가 여러 개의 계 모임을 동시에 운영하거나 곗돈 규모가 과도하게 큰 경우에는 참여 자체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