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룽커컴퍼니’ 조직원 30년 구형에 “무차별적” 공개 지적

재판부, 공판서 구형 적정성 직접 문제 삼아

 

동남아 국경지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대규모 스캠 범죄에 가담한 ‘룽커컴퍼니’ 조직원들에게 검찰이 징역 30년을 구형한 데 대해 법원이 “무차별적 구형”이라며 공판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조직형 사기 범죄에서 총책과 하부 조직원을 동일한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정곤)는 19일 범죄단체가입·활동 혐의로 기소된 조직원 A씨와 B씨의 공판에서 “송치 사건이라 하더라도 검찰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면, 그에 걸맞은 실체적 사실관계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달 10일 결심공판에서 두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이후 공소장 일부를 변경하고 추가 증거 제출을 이유로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재판부는 변론 재개를 허용하면서도 구형의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총책부터 팀원까지 조직 내 지위와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고, 가담 정도 역시 서로 다르다”며 “정상이 다른데도 조직원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30년을 구형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공소장에도 피고인들이 팀원으로서 유인책 역할만 수행했다고 기재돼 있다”며 “언론에는 선정적인 내용만 부각돼, 가담 정도나 구체적 사실관계와는 달리 범죄수익을 모두 누린 사람처럼 보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또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책임 귀속이 더 중요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넘어가겠다”고 밝혔다. 형사재판부가 공판 과정에서 검찰의 구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들은 뒤 선고 단계에서 구형의 당부를 사실상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법조계에서도 하부 조직원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된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총책이나 핵심 간부가 아닌 팀원에게 이 정도 형량을 구형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다 태국으로 근거지를 옮긴 범죄조직 ‘룽커컴퍼니’에 올해 1~4월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조직 내 ‘로또 보상 코인 사기팀’ 등에서 팀원으로 활동했으며, A씨는 피해자 206명으로부터 약 66억 원, B씨는 691명으로부터 약 150억 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지난 5월에는 식당에 음식을 주문한 뒤 대금을 지급할 것처럼 속여 재료를 소진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방해한 혐의도 적용됐다.

 

조직적 사기 범죄의 양형에서는 전체 편취금액만을 기준으로 형을 정하기보다, 피고인의 구체적 역할과 가담 기간, 실제 취득 이익, 수사 협조 여부, 피해 회복 노력 등을 중심으로 개별 책임을 따지는 흐름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실제 광주지방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 사건에서 하부 역할과 가담 기간, 취득액 등을 고려해 피고인별로 형을 달리 정한 바 있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는 2017년 2월 10일 선고한 2016고합504 판결에서 피고인 A에게 징역 2년, 피고인 B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보호관찰·사회봉사 120시간, 피고인 C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해악과 근절 필요성을 강하게 지적하면서도, 조직형 범죄의 특성상 “편취금액을 그대로 양형인자로 삼을 경우 형평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조직원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공모공동정범 구조에서는 공범 전체의 편취금액이 포괄되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총액’만으로 중형을 기계적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인별 역할과 지위, 가담 기간, 입출국 내역,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피해 회복 노력 등을 종합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태국 콜센터 사무실의 임차·설치 등 범행 환경을 조성한 A에게는 실형을 선고하고, 가담 기간이 비교적 짧고 취득액이 크지 않았던 B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며 “장기간 상담원으로 활동한 C에게도 실형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같은 조직형 범죄의 경우에도 피고인별 지위와 역할, 범행 관여 정도를 구분해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곽준호 변호사는 “검사의 구형과 법원의 선고는 별개의 문제”라며 “구형은 죄질이 무겁다는 수사기관의 의견일 뿐, 법원은 이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선고형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직형 범죄 사건에서는 전체 범죄 규모보다도 피고인별 역할과 가담 경위, 실제 관여 정도를 어떻게 소명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총책과 하부 조직원 간 역할 분담과 책임 범위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주장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