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 법제화…“수사 단계서 법률자문 보호”

변호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방어권·인권 보장 수준 한 단계 상향”

 

수사 과정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이 주고받은 법률 자문 내용과 의견서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지금까지 변호사에게 부과된 비밀유지 ‘의무’ 중심의 제도였다면, 이번 개정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개념이 법률에 도입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법률 상담과 자문 자료를 보호하는 이른바 ‘비밀유지권’을 규정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변호사가 직무 수행 과정에서 작성한 법률 의견서와 상담 내용,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교신 자료 등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보호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의뢰인이 공개에 동의하거나 해당 자료가 범죄와 직접 관련된 경우 등은 예외로 규정했다.

 

이번 입법은 수사 과정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법률 자문 자료가 광범위하게 확보되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정비하려는 취지로 평가된다.

 

기존 법 체계에서도 변호사-의뢰인 간 비밀 보호 장치는 일부 존재했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317조는 이를 위반할 경우 업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은 변호사가 업무상 위탁받아 보관하는 물건에 대해 압수를 거부할 수 있는 압수거부권과, 업무상 알게 된 타인의 비밀에 대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증언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어디까지나 변호사에게 부과된 ‘의무’나 특정 상황에서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에 가까웠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자문 자료를 의뢰인 측이 직접 배제할 수 있는 명확한 권리 규정은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휴대전화와 이메일, 메신저 등 전자정보 중심의 수사가 확대되면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교신 내용이 대량으로 확보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제도 개선 논의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근거로 일정한 범위에서 변호사-의뢰인 간 법률 자문 비밀을 보호할 필요성을 인정해 왔다.

 

실제 2024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투자 펀드 관련 범죄 수사 과정에서 회사 임원들의 휴대전화와 저장매체 등이 압수되면서 변호사와 주고받은 메시지와 이메일, 법률 의견서 등이 함께 확보된 사건을 다룬 바 있다.

 

당시 법원은 해당 자료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법률 자문을 받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비밀 교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의자가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변호인과 법률 자문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루어진 의사 교환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메시지와 이메일,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 자료를 압수한 처분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해당 자료에 대한 압수 처분을 취소했다.

 

다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된 자료까지 모두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영장 범죄사실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전자정보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변호사-의뢰인 비밀 보호 제도가 여러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비밀유지 의무는 존재하지만 수사 단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권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다.

 

변호사가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되지만,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는 상황을 직접 제한하는 규정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압수수색 과정에서 광범위한 전자정보가 확보된 뒤 사후적으로 위법 여부를 다투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변호사-의뢰인 간 상담 내용이 사실상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이나 개인이 민감한 사실관계를 변호사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데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개정으로 형사 절차에서의 방어권 보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입법은 인권 보호와 방어권 보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의미 있는 성과”라며 “그동안 비밀을 지킬 의무만 강조되고 이를 보호할 권리는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비밀유지권은 국민이 변호사의 실질적인 법률 조력을 받기 위해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권리”라며 “수사와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법무 분야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법무법인 민의 박세희 변호사는 “비밀유지권이 제도적으로 정비되면서 기업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기업과 법무 부서는 향후 비밀유지권 적용을 고려해 자료 관리 체계와 내부 의사결정 절차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밀유지권 도입을 둘러싼 우려도 존재한다. 법률 자문 자료 가운데 어디까지가 보호 대상이고 어디부터가 범죄 관련 증거인지에 대한 판단을 둘러싸고 해석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압수수색 현장에서 변호사-의뢰인 자료를 선별하고 분리하는 절차가 늘어나면 수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범죄 관련 자료를 법률 자문 형식으로 위장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범죄와 직접 관련된 자료는 예외로 두고 법원의 사후 통제를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입법이 변호사-의뢰인 관계에서의 비밀 보호 원칙을 법률로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제 수사 현장에서 제도가 어떻게 운용될지는 향후 판례와 실무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