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친동생을 살해한 4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피고인의 조현병을 감안해 범행 당시 심신미약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의 중대성을 들어 징역형과 치료감호 처분을 명령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이정엽)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다. 치료감호는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해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A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 약 20년 동안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해 왔으며 서울 관악구 주거지에서 친동생과 함께 살았다.
사건은 지난해 8월 20일 오후 7시 2분께 발생했다. 당시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던 A씨는 퇴근 후 귀가한 동생이 화장실 인근에서 “더워 죽겠는데 빨리 나오지. 이때 꼭 목욕을 해야겠냐”는 취지로 말하자 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흉기를 들고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지 못하게 한 뒤 흉기로 공격해 숨지게 했다.
재판부는 A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정신질환으로 인한 재범 위험이 있으며 치료감호시설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립법무병원 감정 결과 피고인은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간 약물 치료를 중심으로 한 정신과적 전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출됐다”고 했다.
실제로 A씨는 정신감정 과정에서 범행 이유를 묻는 질문에 “키 큰 형사가 칼을 들고 싸우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등 비정상적인 답변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사람의 생명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최고의 법익이자 가장 존엄한 가치”라며 “살인죄는 생명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하는 범죄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진 점 △부모가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경우 처벌하지 않으며, 이러한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조현병 등 정신질환의 경우 외형상 정상적인 의식 상태로 보이더라도 범행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면 행위 통제 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봤다. 이러한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선고 92도1425 판결).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조현병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망상이나 충동 조절 장애 등으로 인해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나 행위통제 능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법원도 단순한 분노 범행인지 정신질환으로 인한 충동 조절 실패인지 등을 면밀히 살펴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과 같이 심신미약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에는 형이 감경될 수 있지만 범행의 중대성이 큰 만큼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형벌과 별도로 치료감호가 함께 명령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