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이라는 획기적인 소설을 냈을 때,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 르트가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더 시사법률이 창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지금까지 우리를 위한 신문은 없었다”는 창간 호의 캐치프레이즈를 보았을 때, 그 ‘건전지의 발명’을 떠올렸습니다. 반짝반짝 한 아이디어와 폭발력 때문이었습니다. 왜 이런 신문이 없었을까. 더 놀란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기존 신문 내용을 대강 짜깁기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뜻밖에도 내용이 알찼습니다. 이런 수준의 신문을 이렇게 자주 낼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역시 구독자 수의 가파른 증가는 파죽지세였습니다. 겨우 1년밖에 안 되었나 싶습니다. 그 초기부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이고 보람이었습니다. 2년 차에는 ‘자동차의 발명’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전을 기대합니다.
휴가로 온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 스미냑 해변에서 쓰고 있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따뜻하고도 시원한 바람을 서핑하듯 타고 와서 내 뺨에서 부서져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은 이런저런 열대 과일을 뒤섞어 놓은 다채로운 빛깔의 칵테일 색으로 변해가서 긴 빨대를 꽂으면 단물이 주루룩 흘러나올 듯하다. 발리를 낙원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귀국하자마자 구치소로 가서 의뢰인들을 접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문득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케로보칸(Kerobokan)’ 교도소가 바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낙원 같은 발리와 대조적으로 이 교도소는 과밀수용으로 유명하다. 정원이 300명 정도인데 수감자가 1600명이 넘는다. 이곳에 있는 수용자들은 거의 80%가 마약 사범이고 10% 이상이 외국인이다. 과밀수용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수용자들에게 정신병, 자살, 전염병도 많다. 반면, 이들을 지키는 교도관은 십수 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탈옥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1999년에는 289명이 탈옥했다가 하루에 104명이 잡히고 185명이 도주했다. 2017년에는 4명의 수용자가 땅굴을 파고 배수로를 통해서 탈옥했
구속된 수용자의 변호를 맡는 경우 대개 가족이 찾아와서 선임 계약을 한다. 구속된 사람이 가족이나 믿을 만한 조력자가 없으면 좋은 변호사를 찾아서 선임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변호사를 찾으려면 이곳저곳 알아보러 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평판도 조회하고, 직접 변호사들을 만나 보기도 하고, 수임료 흥정도 해야 하고, 수임료 대납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가 않다. 사실 가족이라도 이런 일을 다 해 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속이 되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극도로 제한된다. 밖에서 제아무리 잘 나갔고, 돈과 권력이 있었고, 똑똑했더라도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수의를 입고 수감되면 무기를 빼앗기고 포로가 된 장수처럼 무력화된다. 그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솟아오르기도 한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좁은 공간에 갇히는 것 자체로 형벌을 받는 듯 괴로울 것이다. 그만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은 이런 감정적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을 살고 헤쳐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수용자가
변호사가 되어 보니, 재판장과 인연이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를 찾아서 일종의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본다. ‘재판장과 말이 통하는’ 변호사를 찾는다고도 한다. 여기서 ‘말이 통한다’는 것은 재판장과 사적으로 잘 알아서 전화를 걸거나 따로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판사들 숫자도 적어서 서로 가까웠고,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현직 판사들과 술 한잔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사건을 좀 더 잘 봐주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 3천 명이 넘는 판사들이 있어서 동기라도 서로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요즘 판사는 정년까지 법원에 머물러 있는 추세이다. 판사들 입장에서는 변호사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 마당에, 잘 알지도 못하는 판사 출신 변호사라고 괜히 형량을 깎아주고 승소시켜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도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현직 판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판사들이 재판하는 사건을 수임한다고 해서 잘 봐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서도 사건 이야기를 하는 순간 관계가 어색해지고 체면이 깎인다. 이것이 현실이다. 간혹 재판장이 내 동기라고 해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
유럽의 도시들 중에서 나는 유난히 피렌체를 좋아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미켈란젤로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이 도시는 자유와 창의성의 이미지로 가득한 곳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영화나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같은 소설에서도 피렌체는 인상적인 배경으로 등장하며, 내게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떠난 배낭여행에서 피렌체를 찾았을 때, 나는 그 도시가 가진 예술적 생동감에 깊이 매료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거리 곳곳에 자리한 가죽 옷 공방들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피렌체에 가면 가죽 재킷 하나쯤은 꼭 사야 한다고 말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짜리 대학생에게는 어울리기 어려운 스타일의 옷들이었고, 그 말을 들은 걸 후회도 했지만, 그 덕분에 공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게 뒤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공방에서는 나이 든 장인과 젊은 견습생들이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원단 위에 초크로 선을 긋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재봉틀 앞에서 집중하며 박음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공방이라는 공간은 그들의 직장이자 삶의 터
판사가 되기 전에는 판사가 되었을 때 증인들의 말과 증거를 살펴보면 소설 셜록 홈즈나 드라마 속 CSI처럼 손쉽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소설이나 드라마가 감추어 둔 사실관계는 두세 가지 증거만 나와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현실 재판에서는 과거 진실을 온전하게 복구하는 데 필요한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증거가 충분히 많다면 피고인이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 간에 이견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현실의 법정에서 증거 몇 조각을 가지고 과거의 사실관계를 온전하게 복구한다는 것은 이미 와장창 깨어져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들고 유리창을 복구하는 작업과 같다. 유리 조각의 절반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몇 조각을 집어 들어봤자 그것이 있던 자리가 어딘지 알기 어렵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누군가가 유리 조각에 손을 벤다. 한 마디로 그것이 확실한 진실이라고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가해자는 가해자라서, 피해자는 피해자라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어 온전히 믿기 어렵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사람들, 그러니까 증인의 말도 법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불신의 대상이다. 제삼자들도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