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나는 아침에 동네 헬스장에서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대치동 집에서 차를 몰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공직에 있을 때는 출근길에 차 안에서 항상 뉴스를 틀어놓았지만 지금은 주로 팝이나 가요 같은 음악을 듣는다.
내 사무실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한가운데 난 왕복 8차선 도롯가에 있는 ‘정곡빌딩 남관’ 건물에 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음악을 끄고 엘리베이터에서 5층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변호사로서의 하루를 시작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 같다.
내 방이 따로 있지만 나는 주로 상담실에 머문다. 디퓨저 향기가 은은하게 흐르는 상담실로 들어가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비록 5층이지만 이 건물에서 제일 높은 층이고 비탈길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검은색 블랙박스처럼 생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청사도 보인다.
늘 같은 건물이었을 터인데 최근에 검찰권이 약화하면서 왠지 과거보다 건물이 작아져 보인다. 흔히 변호사들이 고객과 상담하는 회의실은 밝은 형광등 아래 업무용 회의 테이블과 회전하는 업무용 의자들이 마주 보고 놓여 있다.
그렇지만 나의 상담실은 형광등을 다 없애고 검은색 갓을 씌운 주황색 벽열등 조명들을 벽과 천장에 비추는 간접 조명만을 비춘다. 딱딱한 회의용 의자 대신 집 거실에 있는 소파 중심의 응접세트를 놓아두었다. 벽은 붉은색 벽돌들이 층층이 쌓인 인테리어로 꾸몄다.
이 방에 들어온 분들은 대개 “이곳은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좋은 카페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그 인테리어는 내가 카페보다는 카우치가 있는 정신분석가의 상담실을 떠올리며 설계한 것이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마음속 깊은 말들이나 비밀을 털어놓기가 수월하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판사 동료들이 요즘 나를 보면 첫마디가 대개 “변호사 되니 좋아?”이다.
나는 “패키지여행 하다가 자유 여행하는 것 같아서 좋아”라고 답한다. 사실 판사는 내게 분에 넘치는 직업이었다. 나이와 깜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실제보다 더 반듯한 사람인 양 신뢰받았다. 판사는 젊은 나이부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누구에게 간섭을 받지도 않는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법정에서도 판사만큼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판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 패키지여행 같은 것이었다. 판사의 일은 패키지여행의 일정표처럼 미리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판사의 재량이 아주 넓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판사의 판단은 대부분 기존부터 존재하는 법령과 판결례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판사가 구사할 수 있는 선택지는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음악 선율처럼, 화가가 붓을 들고 캔버스 위에서 구사하는 색조처럼 다양하고 풍부하지 않고, 유죄 아니면 무죄, 합법 아니면 위법, 기각 아니면 인용같이 이분법적, 단선적이다.
복잡한 인간을 놓고 유죄 아니면 무죄, 적법 아니면 위법, 인용 아니면 기각 같은 이분법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보면 내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침대에 묶어놓고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늘려 죽이던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가 된 것 같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