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도 “형기 기준 선거권 박탈은 위반”…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의 선거권을 형 집행 종료 전까지 일률적으로 박탈하는 현행 규정이 민주주의 원칙과 국제인권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죄명이나 선거와의 관련성을 따지지 않는 광범위한 제한은 사실상 ‘정치적 시민권 박탈’이라는 비판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1년 이상의 징역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선거권 행사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8조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 확정된 사람은 선거권이 없으며 1년 미만의 형을 선고받았거나 구속 재판 중인 미결수, 집행유예자는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9월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수형자 10명이 공익인권변론센터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인들은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가 보통선거원칙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선고 형량만을 이유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집행유예자와 형이 확정된 수형자 모두 선거권이 제한됐지만 헌법재판소가 2014년 1월 집행유예자에 대한 선거권 박탈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하고 2015년 말까지 수형자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집행유예자는 즉시 선거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국회는 2015년 8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받아 교정시설에 수용된 수형자와 가석방자의 선거권은 박탈한다’는 기존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국제 기준과의 충돌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5년 3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역시 동일 규정에 대해 “기간만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자유권규약 제25조가 보장하는 보통선거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선택의정서 가입국으로서 위원회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제 기준과의 충돌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정치권 밖으로 밀린 교정행정…예산까지 삭감
이 같은 국제적 논의는 국내 교정행정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형자 선거권 부재가 교정 정책을 ‘정치적 사각지대’로 만들고 그 결과 교정공무원 처우 개선도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의 ‘2026년도 예산안 총괄분석’과 법무부의 ‘지출구조조정 사업’을 비교하면, 교정 분야 예산은 전체 감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대폭 축소됐다.
감액은 교정시설 유지관리, 교화·처우, 소년원, 치료감호, 외국인보호 등 전 분야에 걸쳐 집중됐다. 세부적으로도 수용동 보수·장비 현대화, 보안구역 물품 구입, 교화·처우시설 개선, 소년원 생활환경, 직업훈련장·치료감호시설 개보수 등 대부분의 인프라가 큰 폭으로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도소행정지원(직원 근무환경 개선) 예산 27억3400만 원은 전액 삭감했다.
해외 학술연구에 따르면 수형자의 투표권 보장이 사회적 소속감·시민성 회복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따라 사회 복귀 프로그램, 교육·직업훈련, 정신건강 지원 등 교정·재범방지 정책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례도 보고돼 있다.
교정공무원들의 처우개선에 대해서도 한 정치권 관계자는 “투표권이 없는 수형자들을 관리하는 직군이라는 이유로 교정 분야 자체가 정치적 관심 밖에 있다”며 “수형자 인권이나 교정시설 과밀 문제의 중요성에도 정치적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OECD와 비교해도 ‘예외’…전면 박탈 국가 소수
국내 연구도 제도적 결함을 지적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수형자 선거권 박탈이 원래 재판 간소화를 위한 ‘명예형 자동부과’ 규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형벌 목적과 교정 목적이 조화되지 않은 채 유지돼 왔다고 분석했다.
자유형 선고만으로 선거권을 자동 박탈하는 방식은 사실상 이중처벌 효과를 낳고, 가석방자의 경우 선거권 회복 규정조차 없어 기본권 침해가 확대되는 구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헌법 이론 연구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는 그간 입법형성권을 존중해 선거권 제한을 합헌으로 본 사례가 있으나 보통선거원칙은 가능한 한 넓은 범위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확립돼 왔다.
범죄사실만으로 선거권의 주체성을 제한하는 입법은 국민주권 원리에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형기 기준만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규정은 비례성 심사에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비판 또한 반복되고 있다.
해외와의 비교에서도 한국 제도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OECD 국가 상당수는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전면 인정하거나, 제한하더라도 개별 심사 방식 등 최소한의 범위로만 규제하고 있다.
국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43개국 중 모든 수형자의 선거권을 형기 동안 자동 박탈하는 국가는 7개국에 불과하며 19개국은 수형자의 선거권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그리스 등 16개국은 범죄 유형이나 형기 길이에 따라 일부만 제한하는 중간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 외 국가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는 수형자 선거권을 제한하지 않으며, 미국은 주(州)마다 규제가 달라 중범죄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이 일반적이다.
다만 캘리포니아·미네소타 등 일부 주에서는 복역 중일 때만 투표권이 제한되고 형기를 마치면 일반 시민과 동일하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제적 추세는 “구금 중인 범죄자라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공식적 합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행 법제가 지속될 경우 반복적인 헌법쟁송과 국제적 비판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수형자 선거권 문제는 처벌 문제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 문제”라며 “교정시설 내 투표는 여러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어 기술적 어려움보다 규범적 판단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권 제한 범위를 최소화하거나 범죄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따지는 기준을 마련하는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