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정 변호사] 더 시사법률의 인연으로 만난 첫 판결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 된 의뢰인
항소심 선고 앞둔 다섯 번의 접견
집행유예 선고하는 판사의 당부
작은 인연이 새로운 출발 만들어

더 시사법률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구독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신문을 통해 소통했던 독자들과 직접 만나게 되고 각자의 사연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내게도 큰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렇게 맺어진 인연 가운데 하나로 사건을 맡게 되었고 첫 판결이 있었다. 항소심 결과는 집행유예. 병역법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의뢰인은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 의뢰인을 접견실에서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뢰인은 짧은 답변만을 반복하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양형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접견이 끝난 후,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간절한 전화가 걸려 왔다. 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렇게 나는 그의 항소심 사건을 맡게 되었다.


판결 선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의뢰인과의 접견을 이어갔다. 약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다섯 번이 넘는 접견을 했다. 처음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던 접견실이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어떤 날은 사회 이야기를 꺼내며 굳어 있는 분위기를 풀어보았고, 어떤 날은 부모님의 안부를 전하며 따듯한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하나하나 작은 다리를 놓듯 마음을 쌓아가자 의뢰인은 조금씩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의뢰인은 조심스럽게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내게 꺼내놓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법정에 진심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변명이나 억지로 보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그가 왜 새로운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정확하고 절실하게 전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회로 돌아가겠다는 의뢰인의 다짐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깊어졌다. 나는 그의 마음속 진심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짐을 헛되이 흘려보낼 수 없었다. 나는 의뢰인이 품은 결심을 하나하나 정성껏 모아 양형자료를 준비했다. 사회에 복귀한 후 계획하고 있는 직업,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다짐, 국방의 의무를 어떻게 다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과 의지를 담아 서면을 작성했고 의뢰인과 함께 최후변론을 연습했다. 바깥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탄원서를 준비하고 추가로 제출할 양형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고 작은 희망이라도 함께 지키려 애썼다.


최후변론에서 의뢰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선고일을 앞두고 나는 그와 마지막 접견을 했다. 그리고 접견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조용히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오늘이 마지막 접견이 되기를 말이다. 다섯 번이 넘는 접견 동안 의뢰인은 변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불안하고 어둡던 눈빛은 점차 사라지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청년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이 청년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 지난날을 딛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를.


그리고 선고일, 법정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판사의 표정은 냉정했고, 방청석도 숨을 죽인 채 선고를 기다렸다. 앞서 진행된 다른 피고인들의 항소 결과는 차갑게 들려왔다. “항소 기각.” 판사는 짧은 말로 선고를 마치고, 한 사건 한 사건을 빠르게 넘겼다.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긴장은 더욱 높아졌다. 마침내 의뢰인의 차례가 되었다. 판사는 내가 제출한 서면과 최후변론을 차분히 언급하기 시작했다. 변론에서 주장했던 양형 부당 사유, 의뢰인의 반성, 재범 방지를 위한 구체적 계획, 가족의 탄원까지 하나하나 짚어갔다. 그리고 짧은 선고가 내려졌다. 집행유예였다.


선고를 마친 판사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집행유예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이 기간 동안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다시 형을 살아야 합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판사는 다시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무거운 당부가 담겨 있었다.


그날 의뢰인은 사회로 돌아갔다. 구치소를 나와 다시 걷게 된 거리 위에서 그는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나는 사건을 맡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서면 한 장, 변론 한 마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작은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 누군가의 새로운 출발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