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최우수로 졸업했고, 학부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았다. 여성인권위원회장과 등록금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제도 바깥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묵살되는지도 가까이서 보았다. 이후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며 확신하게 됐다. 법이 가장 절실한 곳은 화려한 회의실이 아니라 언제나 가장 낮고 절박한 자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법조인이 된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세운 원칙은 분명하다. 법을 사람을 구하는 언어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변호사와 미스코리아 출신 파워 블로거 여성 간의 불륜 스캔들이 있었다. 사건 초반에는 불륜 여부가 쟁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강간치상 무고를 교사했다는 의혹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해당 여성은 과거 증권회사 임원 A씨와 술자리를 갖던 중 말다툼 끝에 술병에 머리를 맞아 전치 2주의 열상을 입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바로 문제의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의뢰인이 “신체 접촉은 없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폭행으로는 합의금이 크지 않다”
아마 교도소 안에서 가장 궁금해할 질문 중 하나는 ‘나에게 선고된 형기를 꽉 채워서 살아야만 나갈 수 있는 것일까’일 것이다. 판결이 이미 확정된 이후라면 대다수는 이제 모든 절차는 끝났으니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법적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형을 줄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미 재판부가 판단을 내린 사건의 결론을 다시 바꾸는 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 예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가능성은 작을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경우와 전혀 모르는 경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절차는 항소나 상고일 것이다. 그러나 항소와 상고는 판결 선고 후 각각 정해진 기간, 즉 7일 이내에만 제기할 수 있다. 이 기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사건에 대해 다툴 수 없다고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항소·상고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법적으로 활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스쳐 지나가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실 수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무너져 내린 일상을 회상하실 수도, 그리고 ‘과연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두려움에 떨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채 항소심을 기다리는 시간은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오롯이 홀로 절망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과정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는 접견 자리에서 물어보십니다. “변호사님, 항소심에서 나갈 수 있을까요?” ‘1심 판결이 내려진 상황에서 항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포자기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30년간 수많은 음주 운전 사건의 항소심을 수행하며 분명히 보았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형기를 다 채우고, 누군가는 집행유예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항소심은 1심의 복사판이 아닙니다. 특히 음주 운전 사건의 항소심은 ‘남아있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설득의 장’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부터 항소심 전략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첫째, 후회를 넘어 성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들이 새로운 변호사를 찾아와 처음 내뱉는 말들은 대개 비슷하다. “상대방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된 것 같다”, “판사가 내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전임 변호사가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식의 성토가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 인사들이 불리한 판결 앞에서 사법부를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는 장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이다 보니, 패소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심정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결문을 뜯어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대다수의 판결문에는 쟁점 하나하나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뇌와 치밀한 법리 검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서 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양과 무게를 고려하면, 그들이 내놓는 결론은 대개 그 시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인 경우가 많다. 결과가 불리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한 판결’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변호사로서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다 보면, 가끔 가슴이 뛰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라, 이 지점은 판단이 빠져있네’, ‘이 증거가 왜 이렇게 해석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즉 ‘1
2003년 전남 진도 ‘송정저수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장동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넘게 복역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은 2017년 재조사가 시작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준영 변호사가 장씨를 도와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 개시를 위한 재판 과정에서 2003년 당시 수사의 허점들이 드러났다. 재심 결정이 이뤄진 뒤에도 장씨는 곧바로 출소하지 못했다.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형의 집행을 멈춰달라는 형집행정지 신청을 넣었지만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장동오씨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누워 독한 항암치료도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4월 2일, 드디어 형집행정지 결정이 나오던 날 그는 끝내 숨을 거뒀다. 그의 왼손과 왼발엔 수갑이, 오른발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진 채였다. 현직 교도관으로 병원에 근무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유독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교도소 내 중증 환자는 외부에서만큼의 치료와 관리를 받기 힘들고 병원에 입원해서도 전자발찌와 발목, 손목에 수갑을 찬 채 있어야 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교도관들은 수용자의 어려움을 가슴 아프
이달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등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체포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범인도피 교사),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직권남용), 계엄선포문 사후 작성 후 폐기(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공용서류손상),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대통령경호법 위반 교사)는 유죄로 인정하고, 외신 허위공보(직권남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전직 대통령 개인의 형사 책임을 넘어,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겪게 될 많은 이들이 반드시 곱씹어 볼 만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변호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번 판결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공수처 ‘인지수사’의 범위가 사실상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영장 집행의 위법성을 주장했다. 법문만 놓고 보면 내란죄가 공수처의 직접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수처는 직권남용 수사 과정에서 내란 혐의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논리로 맞섰고, 재판부는 별다른 장황한 설명 없이 이
내 의뢰인은 검사가 징역 5년을 구형한 강간 사건의 피의자였다. 지인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이라는 점, 피해자의 진술이 존재했다는 이유로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내가 기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사건은 이미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피고인은 그 흐름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조는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기록을 따라갈수록 이 사건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인 간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유리한 증거의 확보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의 탄핵이다. 하지만 대개 물적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결국 재판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나게 된다. 나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갖는 무게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면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술의 신빙성은 선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을 통해 비로소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수사기관의 태도였다
사무실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건기록이다. 책상 위에 정리된 파일을 펼치면, 늘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관계’, 변호사의 하루는 이 단어에서 시작해 이 단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서면은 언제나 사실관계 위에 세워지고, 사실관계가 흔들리면 그 위에 쌓은 모든 논리도 함께 흔들린다. 나는 변호사다. 그리고 습관처럼 모든 문장을 근거 위에 세우려 한다. 의뢰인은 종종 결론을 먼저 묻는다. “이길 수 있나요”, “실형이 나올까요”, “집행유예 가능성은 있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먼저 기록을 펼치고, 조문을 확인하고, 판례를 살핀다. 그 과정이 번거롭고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논리의 뼈대가 서면 안에서 먼저 서지 않으면 법정에서의 말 한마디는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해 왔다. 서면은 결국 말의 예행연습이자, 판결을 향한 가장 첫 번째 설득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서면은 종류가 달라도 기본 구조는 같다. 소장이든 준비서면이든, 변호인 의견서나 항소이유서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평가인가. 무엇이 다툼 없는 사실이고, 무엇
사무실로 찾아온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 조금만 더 빨리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막연히 ‘빨리 맡았으면 잘 풀렸을 사건’이라면서 의뢰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왜 더 빨리 오시지 않았느냐’며 뒤늦게 오신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는 것에 가깝다. 동명의 의학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뤄진 의학계 용어가 있다. ‘골든 타임(정확히는 ‘골든 아워’)’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중상을 입은 후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이 시간 내에 적절한 응급 치료가 이루어지면 중상을 입었더라도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면 이 시간을 놓치게 되면 생존 가능성도 급감한다. 법조계에도 이런 ‘골든 타임’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사건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도와드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 나는 그것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랫동안 끙끙 앓고 계시다가 뒤늦게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의 경우, 사건이 이를테면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 이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석방 인원을 30% 정도 확대하도록 지시했고, 9월 가석방 출소 인원은 1218명으로 지난 5~8월 월평균 가석방 인원(936명) 대비 약 30% 증가했다. 법무부는 지난 11월 ‘2026년 가석방 확대안’을 통해 월평균 가석방 허가 인원을 2025년 1032명에서, 2026년에는 약 1340명으로 전년 대비 30% 확대하여 재범 위험성이 낮은 수형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석방에 관련된 규정으로는 형법(제72조~제76조),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제119조~제122조), 같은 법 시행규칙(제236조~제263조), 가석방 업무지침 등이 있다. 형법 제72조에서 정한 가석방의 허가요건은 징역‧금고의 집행 중인 자가 최종 형기 종료일 기준으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행상이 양호하며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경우다. 형법 제37조 후단의 경합범 등으로 인해 1개의 판결로 수 개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도 ‘각 형의 형기를 합산한 형기’나 ‘최종적으로 집행되는 형의 형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각 형의 형기’를 의미한다. 즉, 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