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수사와 재판은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현실상 판사는 일주일에 수십 건의 사건을 재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쪼개서 만나고, 하나의 사건을 짧게는 반년, 길게는 1-2년씩 재판하며, 인사이동 때마다 판사가 바뀐다.
그러니 어느 한 기일에 한 순간 말을 잘 해서 좋은 인상을 주더라도 판사가 다 기억해서 재판에 반영하기 어렵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고 판결문을 작성할 시점에는 대부분 기억과 인상은 휘발되어 희미해지고, 사실상 대부분 기록에 적힌 글들만 보고 판결한다.
그래서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록에 남아있는 글이다. 다른 글을 잘 안 보는 판사도 변호사 의견서는 꼼꼼하게 본다. 전관예우도 사라진지 오래라고들 하므로, 좋은 글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판사, 검사, 수사관의 마음을 1센티미터라도 더 움직이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
판검사든, 행정부 공무원이든 간부가 되면 다른 직원이 쓴 초안을 수정, 가필하는 일만 하게 되는데 이렇게 몇 년만 지나도 직접 글을 쓰기 힘들어진다. 요즘은 인공지능으로 서면을 쓰는 경우도 많다지만 인공지능이 쓴 글은 여전히 헐겁다.
바닷물에 표층, 중간층, 심해층이 온도나 색깔, 흐름이 제각기 다르듯이, 판사를 설득하는 좋은 글은 각각의 층위에서 판사의 논리, 감성, 형평의 감각, 무의식을 다층적으로 충족시킨다. 즉, 법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우리편이 이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아무리 논리에 충실한 서면을 써내더라도 판사가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유이다.
논리적으로 정치하게 쓰는 것은 기본이고, 그밖에도 일반 상식적 차원에서 우리가 이기는 것이 정당하고 우리가 지면 한쪽이 너무 억울해진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성적인 부분도 터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판사 입장에서 보면, 검사는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지만,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기에 의뢰인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의뢰인에게 속아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변호인의 의견서를 다 믿지 않을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율이 3%에 불과한 것에는 검사가 유죄가 될 사건만 걸러서 기소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와 같은 영향도 있다.
그래서 판사가 보기에 글이 진실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나 근거로 뒷받침하는 것 외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평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심을 기울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고민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서면의 내용은 풍부하고 설득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