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을 찾아오신 분 중에서 과거에 한 번 변호사를 선임해 보았다가 크게 실망하거나 속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이 변호사에 대해 하는 불만이나 불신은 대개 '불성실하다', '내 사건에 관심이 없고 잘 안 챙기는 것 같다', '열심히 안 한다', '연락도 안 된다', '처음 선임할 때와 선임한 이후가 너무 다르다' 등이다.
사람들로부터 변호사에 대한 이런 불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런 문제들이 변호사들의 성의와 품성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작은 로펌을 경영해 보고 주변 변호사들로부터 업무 현실에 대한 솔직한 말들을 들으면서 이 문제가 상당 부분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이런 문제가 있는 구조를 ‘박리다매 수입 구조’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만 말해서는 이 업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대로 그 말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내용은 공적인 성격이고 일반인들도 이를 알면 도움이 되기에 솔직하게 말해 보고자 한다(물론 예외도 적지 않으니, 모든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되는 많은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받으면 로펌에 그중 6,070%를 낸다. 이 돈으로 로펌은 어쏘 변호사나 비서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 비용, 자동차, 기타 관리비를 낸다. (어쏘 변호사 비용을 파트너가 부담하면서 회사에 내는 돈의 비율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남은 금액의 3,050%는 사건을 수임해 온 변호사 또는 직원에게 준다.
남은 금액은 그 일을 수행하는 변호사들이 나눈다. 로펌이 쓴 서면의 마지막 장을 보면 변호사들 이름이 여럿 나열되어 있는데 이들이 수행 변호사들이니 이들의 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가령 수임료를 1천만 원 받으면, 회사에 60%를 내고, 사건을 처음 수임해 온 사람에게 절반을 주면 남은 금액은 200만 원 안팎이 된다.
이중 수행자로 올린 변호사들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고 주로 수행하는 사람이 남은 금액을 가져간다. 이 금액에서 40% 이상에 달하는 소득세도 공제해야 한다. 결국 주 수행 파트너 변호사조차 애초 수임료의 10%도 못 가져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대표나 파트너 변호사로서는 한 달에 십여 건은 수임해야 집에 가져가서 생활비를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저런 모임도, 술자리도, 골프 약속도, 최고경영자 과정 같은 학교도 다녀야 한다. 그러면 기록을 찬찬히 볼 시간도, 서면을 쓸 시간도 없다.
결국 실제 일은 어쏘 변호사 혼자 다 하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는 개별 사건 진행 상황을 잘 모르니 고객의 전화나 만남을 피하게 된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이 고객이 변호사를 찾는 전화를 받으면 변호사가 자리에 있는데도 없다고 둘러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쏘 변호사는 기록도 혼자 읽고, 서면도 혼자 쓰고, 법정도 혼자 나가게 된다. 1, 2년 차 어쏘 변호사는 한창 일을 배워야 하고 또 혼자 일하면 본인도 잘못할까 봐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 한다. 대표나 파트너를 만날 시간도 잘 없을뿐더러, 대표나 파트너가 기록을 안 보기 때문에 질문해도 좋은 피드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 본 어쏘 변호사들은 동시에 100건 이상씩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70건을 가지고 있다는 어쏘 변호사도 만나 보았다. 7,080건 정도를 가진 경우는 보통이다. 사건을 동시에 100건 가지고 있다면, 한 달에 재판 기일이 한 번 돌아온다고 할 때, 월 20일 기준 매일 5건씩 재판이나 경찰 조사 참여 등을 다녀야 한다.
그 5건이 모두 같은 법원이나 경찰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지방일 수도 있고,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한 건은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서울동부지방법원이고 다른 한 건은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일 수도 있다.
일과 중에 이렇게 다섯 군데씩 법원이나 경찰서를 다니면 다음 날 재판 준비는 저녁에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간단한 사건을 준비하더라도 한두 시간은 걸리고 어떤 사건은 일주일 내내 기록을 보고, 서면을 쓰고, 증거를 모으는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니 매일 자정을 넘겨 일하지만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게 되면 준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30페이지는 써야 판사를 설득할까 말까 한 기일에도 23페이지짜리 서면을 내게 된다(표지까지 합쳐서 3장짜리도 심심치 않다). 급하게 쓴 서면은 의뢰인에게 보여 주고 의견을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의뢰인 중에서 자기 변호사가 어떤 내용으로 변론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급조된 서면이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고 판사들이 이런 서면을 보면서 혀를 찰 때가 많다. 증인을 56명 신청해야 하는 사건도 12명을 신청하고 말거나, 열심히 다투면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사건도 의뢰인을 설득해서 자백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일을 줄여도 도저히 해낼 수 없을 때는 갑자기 기일 연기 신청을 한다. 그마저도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할 수 없으면 기일에 나가서 한 번만 기일을 더 달라고 판사에게 읍소하게 된다. 그때마다 재판이 한두 달, 두세 달씩 늘어진다. 이렇게 일하면 어쏘 변호사도 고달프고 힘들다. 그렇게 혼자 버티다가 1년쯤 되면 도망가듯 이직하는 것이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뉴노멀’이 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어쏘 변호사는 대개 기존 어쏘 변호사보다는 후배로 경력이 더 짧다. 변호사 1년 차로 생전 처음 변호사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의 변호사는 쉬운 사건, 간단한 사건을 먼저 처리하고 어려운 사건은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 온 변호사가 물려받은 사건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처럼 어려운 사건의 비중이 높다. 그러면 새로 온 변호사는 기존 변호사보다 더욱 힘들어하면서 버티다가 또 다음 해 새로운 변호사에게 바통을 넘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송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해마다 1,700명이나 되는 변호사들이 새로 나오는데도 송무 변호사는 점점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구조적 현실을 알게 되면 앞서 사람들이 변호사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불만들이 왜 생겨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 화에 계속)